국가원수 못잖은 영향력행사-세계은행 중남미담당관 이계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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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통화위기극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멕시코가 국제적인 금융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은근히 「눈치」를 살피게되는 한국인 관리가 있다.워싱턴에 본부를 둔 세계은행(World Bank)의 중남미 인력.사회 부문 차관 심사를 책임지고 있는 이계우(李啓宇.54.사진)담당관이 바로 당사자.
한국에는 별로 알려져있지 않지만 멕시코.베네수엘라등 중남미 10개국에 그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다소 과장한다면 『(이들 국가에)국가 원수 못지않은 파워를 행사한다』고주변에서는 평가하고 있을 정도다.
5년째 중남미 지역을 맡고 있는 그의 역할은 해당 10개국들이 세계은행에서 빌려가고자 하는 차관들의 내용과 규모를 결정하는 일. 기획에서 승인에 이르기까지 통상 3년이 걸리는 차관 제공의 전과정에 직접 관여하며 해당국과의 협의 끝에 최종안을 만들어내는 실무그룹 60여명의 총책임자다.올들어 그가 「주무른」차관액은 15억5천만달러.멕시코에 대한 특별지원 때문에 금액이 늘어났는데,연평균 5억달러 정도가 그의 손에서 요리되고 있다. 세계속에서의 한국위치에 대해 『지난 20여년동안 엄청난 위상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 세계은행 관리 입장에서 보는 한국에 대한 평가다.『무이자 차관을 받던 나라에서 차관 제공국으로탈바꿈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력에 관해 구체적인 분석에 들어가면서 그의평가는 조금씩 달라진다.그에 따르면 한국은 현재 경제규모로 세계 10대,무역으로 따져서는 세계 11대에 들어가는 경제 강국.하지만 『규모의 화려함과는 달리 내실이 부족하 다』는 것이 그가 꼽는 문제의 핵심이다.『국제사회에서 과연 경제력에 걸맞은위상을 확보하고 있는지,또 제몫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는것이다.그가 한국과 견주어 보는 대표적인 나라가 멕시코.한국에비해 소득 수준이 절반에 불과한 경제 후발 국가임에도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것을 비롯,각종 국제기구등 전세계 무대에서 행사하고 있는 경제상의 영향력이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아시아개발은행 차관으로 시행되는 공사에서는 한국이 방글라데시보다 용역 수주액이 뒤떨어질 정도로 『한국은 제몫을 찾지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행정고시에 합격해 잠시 노동부에 몸담았다가 유학과정에서 세계은행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현재 세계은행 근무 21년째를 맞고 있는 베테랑.
그는 『세계화는 구호에 앞서 실천이 중요하다』며 진정한 국제화 인력으로 자리매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워싱턴=金容日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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