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답답해 내 돈으로 만들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호 16면

경북대 홍원화(45·건축학·사진) 교수는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의 백서를 직접 만들었다. 관계 당국에서 제작 의뢰가 오지 않았는데도 “학자로서 너무 답답해” 제작에 나섰다고 한다. 당시 그는 대구시 건축자문위원과 경북대 방재연구소 소속 교수였다.

대구 지하철 화재 백서 발간, 홍원화 교수

사고가 난 직후 대학원 석ㆍ박사 16명과 함께 화재 현장과 생존자, 관련 기관을 발이 닳도록 찾아다녔다. 5000만원에 가까운 개인 호주머니를 털고, 꼬박 1년을 매달린 끝에 2004년 2월 ‘2ㆍ18 대구 지하철 화재 연구조사 보고서’라는 백서가 나왔다.

홍 교수는 “당시 대구시에 함께 사건 진상을 규명하는 백서를 내자고 요청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당국은 진상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허둥댔다”고 회상했다. 대구시는 사건 발생 다음날 대통령이 내려온다는 소식에 화재 현장을 물청소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벌였다고 한다. 대구시가 공식 백서를 만든 것은 홍 교수의 책이 출간되고 난 뒤 시작돼 2005년 2월에야 끝났다. 그나마 “시의 백서는 기본 양식을 못 갖춘 내부 수습 보고서 수준”이라고 그는 비판했다.

그의 백서 제작 과정에서 ‘인재 공화국’의 수준이 드러난다. 홍 교수는 화재 발생 다음날 국립대 방재연구소 소속 교수 자격으로 불이 난 중앙로역을 찾았지만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황당한 것은 같은 날 일본 국립화재연구소가 현장에 조사단을 파견, 3일 동안 현장을 샅샅이 살폈다는 점이다.

“국내 방재 전문가의 현장 출입을 거부하고 남의 나라 사고에서 교훈을 얻으러 온 외국인은 들여보냈다는 게 어디 말이 되는 일입니까.”
그는 결국 백서 제작 과정에서 일본 조사단의 자료를 ‘역수입’해야 했다. 주위에서는 홍 교수의 백서 제작을 말렸다. “홍 교수,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그러다 잘못하면 다쳐.” 사고 원인과 문제점을 조목조목 밝히는 백서를 내면 관련 당국이 싫어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대구시와 경찰ㆍ지하철공사 등 관계기관에서는 홍 교수를 희생자 편으로 여겨 자료 제공을 거부하며 경계했다. 희생자 가족도 그를 관계기관의 편이라 여기고 접근조차 못 하게 했다.
그는 “전문가를 인정해주지 않는 국내 풍토에 환멸을 느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달랐다. 대구 지하철 화재 조사단의 연구를 바탕으로 일본 내 지하공간 화재에 대비한 훈련과 시나리오 제작 등 제도와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발 빠른 모습을 보였다. 홍 교수는 “재난이 일어나면 곧바로 정부 주도 아래 진상조사단이 꾸려지고 이를 바탕으로 백서가 나올 수 있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