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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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당신 손으로 직접 전해드리는 것이 좋겠어.같이 가서 아이를데려옵시다.』 생각지도 않던 일이다.
『그게 좋겠어요.아버지 혼자서 아기 데려오긴 어렵지 않겠어요?』 연옥이 거들었다.
『가시는 김에 일본 구경도 하고 오세요.어머닌 그전부터 「일본속의 한국」흔적을 보고싶어 하셨잖아요?』 『좋은 생각이다.그렇게 해보자.』 남편은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길례의 일본 나들이는 길례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해지고 있었다.
길례는 일본에 가본 적이 없다.외국여행이라곤 스페인을 단체여행했을 뿐이다.그것은 평생에 단 한번 자기가 자기에게 선사한 「호사」였다.
더군다나 남편과 함께 다니기는 경주로 신혼여행한 것 밖에 없다.애당초 아내를 데리고 다닐 염의도 내지 않는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이 해외 나들이를 함께 하자고 한다.
딴은 낯선 돌짜리 아이를 남자 혼자 손으로 외국에서 데려오기는 힘든 일이다.그래서 도움이로 가자는 것이지 아내에게 호사시켜 주기 위해 가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다 마음을 고쳐 잡았다.아니지,남자 혼자서도 얼마든지 아이를 데려올 수 있는 세상이다.
공항까진 아기 외할머니가 따라오면 될 것이고,공항에선 여객기회사 직원이,비행기 안에선 스튜어디스 아가씨가 돌봐준다.아기 혼자서라도 능히 올 수 있는 것이다.
사시안(斜視眼)적인 자세가 늘 길례를 처참하게 해왔다.좀 순순해지자고 맘먹으며 간간이 남편이 내뱉듯한 말을 떠올렸다.
『이,사랑 받을 줄도 모르는 여자야!』 하지만 그것도 독단적인 일방통행이다 싶었다.아리영 아버지의 무조건인 사랑은 무조건받아들인 길례였다.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도 나는 것이다.
이제 소리내기 위해 내민 남편의 손을 순순히 받아들일 차례인것같았다.
잠자리에 들며 『규합총서』를 폈다.
남편과 각방을 쓰기 시작하면서 길례에겐 잠자리에서 책읽는 습관이 생겼다.「육신」의 불을 끄기 위해서였다.
어둠 속에 깨어 누워 있으면 「육신」은 팽팽히 긴장하며 한마리 다람쥐가 되어 가쁘게 숨쉬기 시작한다.그것이 몹시 힘들었다. 그러나 불을 밝혀 책 펴고 두서너 페이지 읽다보면 괴롭지 않게 잠이 오곤했다.이런 경우 가장 읽기 좋은 책이 『규합총서』다.조선조 사대부(士大夫)집안 여인들을 위한 백과사전과 같은책이다. 아기 기르는 열가지 중요한 법-.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 눈이 갔다.
『첫째 등을 따뜻하게 함이오,둘째 배를 따뜻이 함이오,셋째 발을 덥게 함이오,넷째 머리를 차게 함이오,다섯째 가슴을 서늘하게 함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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