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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21>7.새로운 노사관계의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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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1세기를 앞두고 노동계에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종전의 대결일변도에서 참여.협력적인 노사관계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다.21세기 정보산업화시대에 경쟁력있는 존재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근로자를 경영의 동반자로 대우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근로자의 경우도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공영(共榮)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새로운 추세다.달라지고 있는 노사관계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전문가 진단을 통해 짚어본다. [편집자註] 서구 선진국에서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해 집단의 힘으로 사용자측에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세기 후반부터다.
초기 서구의 노동운동은 주로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계급투쟁을 표방하는 정치적 조합주의에 의해 주도됐다.
2차대전후 노사관계가 민주화된 일본의 경우도 초기에는 과격한정치적 조합주의로 인해 노사분규가 빈발했다.
산업화가 진전되고 사회복지제도가 확충돼감에 따라 정치적 조합주의의 세력은 점차 약화된다.대신 사용자측에 맞서 근로자의 경제적 이익을 신장하는데 주력하는 경제적 조합주의와 노사협조를 통해 경제.경영민주화를 이뤄나가는 개혁적 조합주의 가 2차대전이후 서구국가의 노사관계 유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70년대이후 산업의 소프트화와 기술.정보화가 급진전되자 노사대립적 경제주의가 갖는 취약성이 드러나게 된다.
과거 대량생산체제에서는 노동을 최대한으로 단순.표준화해 고도의 분업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이 당시 노사관계는 창출한 부가가치를 분배하는 과정에서 갈등관계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술.정보화에 따라 다품종 소량생산시대에 접어들게 되자 고도로 분업화된 체계가 더이상 생산의 효율성을 보장해 줄 수 없게 된다.
지나치게 분업화된 조직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고 관료화된 비능률을 야기했다.
소량생산시대에는 직무를 수시로 유연하게 바꾸어야 하므로 일선조직에서의 협력과 창의력,근로자의 다기능화등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건이다.이에따라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생산과정에서의 노사간 협력적 틀을 구축하는 것이 필 요하게 된다. 테일러주의의 과학적 관리법과 포드주의의 분업구조에 토대를 두고 세계경제를 지배해온 미국식 생산체제가 70년대이후 근로자의 숙련과 노사협력에 바탕을 둔 서독과 일본식 생산방식에 경쟁력면에서 뒤지게 된 것은 정보산업화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 할수 있다.
80년대 들어 미국이 전통적인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벗어나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해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되고 있는 제록스.AT&T.코닝社등의 노사관계구조 개편에서 드러나듯이 대기업들이 이러한 변화를선도하고 있다.
특히 80년대 중반 GM의 새턴공장은 서구식 참여.협력적 노사관계 실험으로,누미공장은 일본적 노사관계 실험으로 각각 주목을 받아 왔다.
견제와 균형을 모토로 하는 미국의 문화적 풍토에서 협력적 노사관계가 자리잡을 수 있을지,노사관계의 구조전환이 소기의 경영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참여.협력적 노사관계가 확산돼야 한다는 공감대는 어느정도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노사관계 구조개편을 위한 미국정부의 지원도 강화돼 왔다.
미국의 미래노사관계위원회는 2년 가까운 연구끝에 지난 연말 노사관계가 협력적으로 전환돼야 하고 이를위해 근로자 참가채널을구축해야 한다는 최종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서구와 일본의 노사관계에서도 협력이 강조되고 있다.
서구에서는 10%대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이 노사간 교섭에 의해 형성된 높은 임금수준과 제도적인 고용보장에 기인한다는 비판이 80년대이후 유력하게 제기됐다.
지난해 폴크스바겐社에서 어려운 여건을 노사협력으로 타개해나가기 위해 근로시간과 임금을 동시에 줄인 단체협약이 체결된 것은과거의 노동운동 이념에서는 수용될 수 없는 유연한 타협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최근들어 일본에서도 연공서열체계와 종신고용관행이 무너지고 있다. 지식.정보화가 진전됨에 따라 노사의 계급적 분화가 소멸돼근로자에 대한 경직된 보호제도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도 87년이후 수년간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참여.협력적 틀을 구축할 수 있는 질적 전환기에 접어들어가고 있다. 90년대 들어 몇몇 대기업과 노조가 협력체계를 선언하는등 노사관계 개편을 선도하고 있으며 다수의 기업이 노사대화를 활성화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노총과 경총간의 산업평화를 위한 공동선언과 최근 많은 기업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는 노사화합.협력 선언도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것이라 본다.
물론 민주적 노사관계의 경험이 일천한 우리나라에서 바람직한 참여.협력적 노사관계가 쉽사리 확산돼 나가기는 쉽지 않다.
민주적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가 미흡하고 노사간 불신은 아직도뿌리깊다.참여.협력적 노사관계는 기업단위 노사의 노력만으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상급 노사단체의 역할이 증대돼 개별 단위사업장 노사를 지도하고 사안에 따라 기업의 차원을 넘어선 집합적 대응을 효과적으로이끌 수 있어야 한다.
상급노조의 대표성 제고와 함께 각종 협회등 경영단체의 취약한노동관련 기능이 제고돼야 할 것이다.
또한 참여.협력적 노사관계의 여건조성을 위한 정부의 노력도 강화돼야 한다.
사회적 형평이 어긋나고 물가가 올라 생계비를 위협할 때 기업단위 노사관계는 불안정하게 된다.
80년대말 노사관계 불안이 당시의 부동산투기열풍에 따른 사회정의의 왜곡 때문에 가중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개혁정책도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참여.협력적 노사관계는 21세기 정보산업화시대에 부응하는 노사관계며 이러한 참여.협력적 노사관계의 바람직한 한국적틀을 조속히 구축하는 것이 선진산업화를 이룰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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