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딸기 …‘로열티’ 내고 먹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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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 근교에서 장미를 재배하고 있는 김모(57)씨는 요즘 다른 농사를 할까 고민 중이다. 외국 장미 품종을 기르는 대가로 물어야 하는 로열티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3300㎡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장미를 키워 김씨가 올리는 매출액은 연간 9000만원 정도. 여기서 4~5% 정도가 로열티로 나간다. 장미는 시장에서 팔리는 품종의 96%가 외국산으로, 재배농가들은 묘목당 1000~2000원 정도를 로열티로 낸다. 김씨는 “로열티를 외국에 내지 않도록 우수한 국산 장미 품종이 많이 개발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후년이면 김씨처럼 로열티로 고민하는 농가가 훨씬 많아질 전망이다. 신품종 개발자에게 로열티를 내야 하는 ‘품종보호권’이 2010년부터 전 농작물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되기 때문이다

◇품종보호권 대책 막막=품종보호권이란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이 체결한 ‘식물 신품종의 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으로 작물에 적용되는 일종의 특허권이다. 우리나라도 2002년 UPOV에 가입한 이후 현재 장미·국화·사과·배 등 189개 작물을 품종보호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들 신품종의 종자나 묘목을 무단 재배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정부는 2010년부터 모든 농작물을 보호 대상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늦어도 2012년까지는 바다에서 생산되는 김·미역·다시마 등 해조류에도 품종보호권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예전에는 내지 않아도 되는 로열티를 2010년부터는 추가로 내야 한다. 외국산 종자 비중이 큰 감귤(98%)·딸기(65%) 등은 특히 농가 부담이 커지고, 덩달아 소비자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2년부터 품종보호권을 적용해 온 화훼류의 경우 재배를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기도 했다. 장미의 주산지인 충북 진천은 2002년 76가구였던 장미 재배 농가가 지난해 39가구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같은 기간 재배 면적도 27.7㏊에서 15.3ha로 감소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06년에만 ^장미 76억3000만원 ^난 27억원 ^국화 10억4000만원 ^카네이션 5억5000만원 등 화훼류의 종자 로열티로 120억여원이 해외로 나갔다.

국립종자원 품종심사과 조일호 팀장은 “ 2010년이면 로열티를 노리고 국내에 진출하는 외국 종자 회사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품종 개발 투자 확대해야=화훼류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해조류에 대해선 아예 손을 놓고 있다. 국립종자원에 따르면 현재 해조류의 품종이 국내산인지, 해외산인지를 구별할 기준도 세워지지 않았다. 신품종을 개발해도 이를 확인해 줄 기관조차 없는 실정이다.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박명섭 교수는 “우리나라가 많이 수출하는 김·미역·다시마를 양식하는 데 사용하는 종자의 대부분이 일본산”이라며 “일본이 DNA 검사를 근거로 수출용 김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하면 어업인들의 피해는 치명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국내 신품종 개발 관련 정책이나 연구 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일본은 농림수산성에 종묘과(40여 명)를 별도로 두고 있으나 국내 품종 개발인력은 농림부 직원 4명(종자제도-관리계)이 고작이다. 딸기의 경우 국내 연구인력은 8명(농촌진흥청)이지만 일본은 15배나 많은 120명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대형 종자회사들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서 이들과 맞서 싸울 토종 기업의 수도 줄었다. 농가의 무관심과 정부의 지원 부족에 민간 부문의 경쟁력까지 약해진 것이다. 농촌진흥청 고관달 박사는 “우리 품종과 시장을 지키기 위해 전문인력 육성과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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