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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출근해 달과 함께 퇴근

중앙일보

입력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이명박 당선인. 이 시간이 오전 7시 30분이다.

이코노미스트 단언할 수는 없지만, 새 정부에서는 ‘밤늦게까지 토론했다고 해서 다음날 한낮이 다 되도록 자는 청와대 참모’(허준영 전 경찰청장의 자서전 『폴리스 스토리』중)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 측근이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관계자들 말을 빌리자면 “씨도 안 먹히는 소리”거나 “불가능한 얘기”다. ‘올빼미형 인간’은 차라리 청와대행을 포기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아니면 체질을 바꾸거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명박 정부=아침형 정부’라는 등식을 보여준 모델하우스였다. 지난해 12월 26일 출범한 인수위에 속한 사람들은 50일간(2월 13일 기준) 딱 나흘 쉬었다. 출범 한 달째였던 1월 26일이 첫 휴일이었다. 토요일이었다. 여기에 설날 연휴 사흘이 전부였다.

하루 일과는 아침 7시 출근, 밤 10~11시 퇴근이 보통이다. “더 일찍 나오고 늦게 퇴근하는 경우는 있어도, 더 늦게 나와 더 일찍 집에 간 적이 없다”는 게 그들의 공통 답변이다.

한시적 조직이고, 워낙 할 일이 많은 탓도 있지만 인수위의 업무 강도는 살인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월 한 달만 보면, 인수위 관계자들은 대략 450여 시간을 일했다.

우리나라 법정 근로시간은 월 176시간이다. 인수위는 힘들기로 악명 높은 소방관의 월 근무시간 360시간(2교대)보다 100시간 가까이 더 일을 했다. 이경숙 인수위 위원장이 “시간은 30일 정도 지났지만 업무는 중요성이나 강도에 비춰 300일에 필적했던 것 같다”고 말한 것이 과장은 아니다.

간사단 회의는 거의 매일 7시30분에 열렸다. 아침식사를 겸한 회의는 일반 직장인·공무원들이 출근해 모닝 커피를 마시기 전에 끝난다.

출범 당시 간사회의는 8시30분으로 잡았다. 하지만 이명박 당선인의 압력(?)으로 1시간 당겨졌다. 5년 전 참여정부 인수위원회는 매주 두 차례 8시30분에 간사회의를 했었다. 이번 인수위는 1월 한 달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쉬고 30일 중 26차례(전체회의 포함) 오전 7시30분에 회의를 가졌다.

인수위가 그나마 여유를 찾은 것은 설 연휴를 마치고서다. 중요 업무가 대부분 종료됐기 때문이다. ‘과속 논란’ 속에 “쉬어가면서 일하라”는 이 당선인의 당부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간사회의도 지난 11일부터는 9시에 열고 있다.

오전 6시부터 곧바로 업무 시작

인수위는 오는 24일께 해산된다. 파견 공무원은 각 부처로 돌아갈 것이고, 인수위 위원이나 간사 등은 정부 일을 하거나, 국회로 진출하거나, 그도 아니면 본연의 자리로 간다. 전문위원과 자문위원까지 합해 600여 명에 달했던 인수위 사람들은 웬만하면 아침형 체질로 바뀌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들 얘기한다.

인수위만 본다면 청와대 역시 아침형 조직이 될 게 뻔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에도 1시에 취침해 5시 일어났다는 이명박 당선인이다. 물론 대통령 기상 시간이 빠르다고 아침형 정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평소 기상 시간이 5시라고 한다 .

차이가 있다면 노 대통령이 체조나 독서, 사색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이 당선인은 신문을 읽고 바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선인 비서실 직원들은 대선 이후 ‘오전 5시 기상, 6시~6시30분 출근’의 연속이었다. 이 당선인은 당선 이후 지금껏 오전 6시에 비서실 직원이 삼청동 안가로 가져오는 당일 일정과 각종 보고서를 검토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캠프회의는 오전 7시 시작됐고, 매일 첫 정례 언론브리핑은 9시30분에 나왔다. 이명박 당선인의 스타일상 청와대는 아침부터 분주한 조직이 될 것이다. ‘아침형 청와대’는 정부 조직 DNA를 바꿔나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의 주요 회의나 주요 국정 현안 발표를 거의 오후에 해왔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출근 시간 국민이 청와대발 속보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

이 당선인의 오랜 측근이자 인수위 경제1분과 위원인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는 “기상 시간이 곧 일의 시작인 분이라 청와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공무원도 꽤나 이른 아침부터 바쁠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하다. 국무회의를 7시30분 소집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장관들이 그 시간까지 보고서를 가지고 청와대로 들어가려면, 공무원 사회 특성상 그 밑 실·국장, 서기관·사무관도 시간을 맞출 수밖에 없다. 공무원은 오전 9시부터가 법정 업무시간 아니냐고? 이를 어긴다고 ‘법치가 훼손됐다’할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수위 간사회의는 매일 오전 7시 30분에 샌드위치나 김밥을 먹으며 진행됐다.

부처별 업무보고 주말에도 진행

인수위는 ‘아침형 정부’와 함께 ‘기업형 정부’의 청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조직 체계, 회의 방식, 보고 체계, 업무 마인드 등 철저히 기업 DNA가 이식됐다. 인수위는 조직도만 본다면 전형적인 기업형임을 알 수 있다. 인수위는 당선자 아래 비서실 조직을 두고, 7개 분과를 배치했다.

이 중 기획조정분과는 기업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한다. CEO가 비서실을 통해 구조본에 지시를 내려보내듯 기획조정분과가 인수위 전체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또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새만금, 한반도 운하, 외국인 투자유치 등은 기업의 ‘프로젝트팀’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인수위 출범 직후 시작된 부처별 업무보고 방식도 기존 정부와는 달랐다. 업무보고는 길어야 2시간 안팎에서 끝냈다. 보고 방식도 새로웠다. 예전에는 대부분 부처 장·차관이 했지만, 이번 인수위에서는 일을 가장 잘 아는 실무자가 보고하도록 했다. 공무원에게는 ‘불가침’이나 마찬가지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진행됐다.

업무보고장 풍경도 위압적이 아니라, 실무 위주의 격론이 오가는 모습이었다는 게 인수위 관계자와 출입기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인수위가 마련한 정부조직 개편에서도 기업형 정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두 가지만 보면 윤곽이 잡힌다.

먼저 ‘바이스(Vice)’ 자리를 없앤 것이 눈에 띈다. 새 정부는 부총리제를 폐지했다. 부처 업무를 총괄·조정했던 국무조정실과 부총리제를 폐지하고, 총리의 역할을 대통령 보좌역으로 축소한 것도 ‘강력한 CEO형’ 모델이다. 또 CEO가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담당 임원이나 실무자를 상대하는 기업형 마인드가 녹아 들었다는 평이다.

새 정부조직 개편의 두드러진 특징인 ‘무임소 특임장관’ 신설도 마찬가지다. 국무위원이지만 특별한 임무를 갖지 않는 무임소장관은 대통령의 명에 따라 그때그때 특별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자리다. ‘리베로형 장관’인 셈이다.

비서실 진용도 기업 비서실을 연상케 한다. 지난 1일 대통령실장으로 내정된 유우익 서울대 교수는 “권위를 갖거나 나서지 않고, 조용하고 절제하며 치밀하게 대통령을 보좌하겠다”고 말했다. 비서실이 사실상 정무를 지휘하는 기존 정부와 달리 기업형 비서실로 가겠다는 뜻이 깔려 있는 발언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그동안 ‘아침형 인간’을 몸으로 보여줬고, 수시로 ‘기업형 정부’를 강조해 왔다.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은 차원이 다른 얘기지만 어쨌든, 새 정부는 철저히 ‘아침형 국가, 기업형 정부’로 가고 있다. 이제 나랏일을 하는 공직자나, 나랏일과 관련된 사람은 누구나 시곗바늘을 앞당겨야 할 것 같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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