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엔高-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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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현기증나는 달러폭락세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원화입장에서는 엔화의 초강세가 연일 기록을 경신하면서 지속되는 것이다. 달러당 80엔대중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외환시장이 왜 다시 요동을 치는가. 통화시장에서 자동차시장에 이르기까지 현재 美日양궁이 벌이는 설전과 난상 토론장을 들여다보면 경제전쟁이 임박하지않았냐하는 느낌을 받는다.
일본은 나름대로 참을만큼 참았다는 태도인데 18일 열린 각료간담회는 이같은 분위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오이데 (大出俊)우정성장관은 『일본은 재할인율을 1%로 내렸으나 미국은 한 일이없다』면서 『로버트 루빈 美재무장관은 괘씸하다』 고 원색적인 비난을 주저하지 않았다.야마구치 쓰루오(山口鶴男)총무청장관도 간담회에서 『미국이 전세계에 제멋대로 깔아놓은 달러가 투기자금으로 돌고 있다.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에 충고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같이 일본각료들이 미국에 대해 원색적인 성토를 하고 나서자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대장성장관은 『워싱턴 G7회담에서 일본이 그동안 달러폭락의 주범으로 지목해온 美재정적자 해소가 초점이 될 것』이라고 공격성 발언을 하기에 이르 렀다.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재 인도를 방문중인 루빈 美재무장관은 『G7재무장관들은 달러화 문제보다는 멕시코사태 이후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달러화는 핵심의제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결국다케무라장관은 일본의 희망을 피력한 꼴이 됐고 미국은 루빈장관을 통해 그들의 속셈이 달러화 하락 방치임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한편 가르텐 美상무차관과 사카모토 요시히로(坂本吉弘)통산차관의 자동차 협상도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하지 실제 아무것도타협이 안되고 있다.일본은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있다고 여기고 미국은 일본의 구조 자체를 바꾸어 놓겠다고 덤비 니 일이안 풀린다.
그동안 엔화가 잠시 안정세를 보인 이유는 엔화에 대한 실수요자인 일본수출기업과 아시아중앙은행이 아닌 투자및 투기자금(헤지펀드등)이 엔매수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시장에 전해지는 뉴스에 민감한 이들 자금이 기회를 놓 칠리가 없다.미국내의 경기가 수축하고 있다는 소식도 달러를 팔고 엔이나 마르크로 해외자산을 이동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미국의 3월중주택신축건수는 한달전에 비해 7.9%로 하락했다.달러에 대한 수요를 부추기자면 美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가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오히려 금리를 인하할지 모른다는 우려때문이다.
일본은행의 긴급개입도 결국 한시적 효과밖에 없기때문에 달러화하락은 지속될 것이다.얼마나 더 떨어지고 얼마나 빠른 속도가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그러나 美日양국의 무역불균형과 미국의 재정적자와 낮은 저축률이 해소되지 않으면 달러화하락-엔超강세는 불가피하다.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일본이 왜 이토록 대응하는데 민첩하지 못하고 뒤뚱거리느냐 하는 점이다.엔超강세는 일본과 한국의 수출입업자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특히 급속한 엔고는 일본경제를 장기디플레이션으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다.이때문에 벌써 일본내에서는연금수혜자들이 많이 가입해있는 보험기금운용에 적신호가 켜져있다.일본의 생명보험회사들은 가입자들에게 4.5%의 수익률을 보장했으나 엔고로 인해 연초 4.5%로 출발한 기금운용수익률이 현재는 3.5%로 떨어졌다.이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생명보험회사들의 수지가 위험에 처할 것은 자명하다.보험회사만의 자산규모는 무려 2조달러에 이른다.
열심히 돈을 모아 공룡같은 기업을 키워냈지만 이제 몸이 너무무겁고 게다가 정부규제로 발이 묶여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환차손(換差損)으로 쌓아놓은 부(富)가 미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본의 모습이야말로 재삼 눈여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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