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128> ‘통일문학’ 갑론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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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소문만 무성하던 ‘통일문학’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통일부는 반입 불허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또 어떻게 될까. 남북한 문인이 함께 만든 최초의 문예지 ‘통일문학’을 둘러싼 갑론을박(甲論乙駁)을 살핀다.

# 갑(甲)

2005년 7월 20일 평양. 남북한 문인이 손을 맞잡았다. 60년 만의 경사였다. 그때 문인들은 다짐했다. 남과 북의 내로라하는 문학을 모아 잡지를 내자고. 이후 세부 계획이 하나씩 마련됐다. 평양에서 5000부를 인쇄하면 남한이 2000부를 1500만 원에 사들이기로. ‘통일문학’의 당사자, 즉 갑(甲)은 남과 북의 문인이다.

# 론(論)

복수(複數)의 갑이 갈라졌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등지고 산 지 반세기가 넘었다. 양측이 문학에서 기대하는 바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협상은 지루했다.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도 여러 번이었다.

남측은 먼저 김일성 수령이나 김정일 위원장을 찬양하는 작품은 남한에서 유통될 수 없다는 원칙을 밝혔다. 원칙에 따라 북한소설 두 편과 평론 한 편이 교체됐다. 대신 북측은 남한에서 황석영의 『객지』와 남정현의 ‘분지’를 싣자고 제의했다. 남측이 반대했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분지’는 65년 반공법 처벌을 받은 작품이다. 북한의 ‘통일전선’이 ‘분지’를 전재한 게 주된 혐의였다. 작가가 나서서 부탁했던 것도 아닌데, 여하튼 남정현은 구속됐다. 황석영의 경우엔 방북사건이 꺼림칙했다.

하나 남측이 가장 난감했던 건, 수록작 선정 작업이 아니었다. 북측은 ‘통일문학’이란 제호의 우선권을 주장했다. 평양에선 89년부터 ‘통일문학’이란 잡지가 발간되고 있다. 2005년 3월 발간된 64호를 보면 표지 안쪽에 ‘눈물 젖은 두만강’ 악보와 가사가 실려있고, 신경림 시인과 몇몇 재외 동포의 작품도 수록돼 있다. 그들은 한참 전부터 한민족을 아우르는 잡지를 만들어왔다고 주장했다. 고민 끝에 남측은 잡지 표지에 창간호를 명시하고, 북측 창간사에 저간의 사정을 적는 것으로 양보했다.

# 을(乙)

통일부가 딴죽을 걸었다. 아니, 부여된 권한을 행사했다. 말하자면 통일부는, 논란에 새로 뛰어든 을(乙)이다. 을은 모두 네 군데를 문제삼았다. 두 차례 쓰인 ‘수령님’이란 어휘, 앞서 언급한 창간사의 구절, 89년 남북작가회담이 ‘남측당국에 의해 차단되었다(311쪽)’라는 글귀다. 을은, 이 대목이 삭제되지 않는 이상 반입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실정법의 차원이라 을의 선처를 바라는 건 애당초 힘든 구석이 있다.

# 박(駁)

이제 남측 갑이 박(駁)에 나설 차례다. 우선 남측 갑은 을에 항의할 참이다. 북측 갑도 을을 비난할 것이다. 남북의 갑은 여태, 이런 식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박(駁)을 상상할 수 있다. 남측 갑이 북측 갑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봐라, 안 되지 않느냐. 우리가 그렇게 안 된다고 했는데, 당신들 얘기대로 했다가 들여오지도 못하게 됐지 않느냐!“

이 지점에서 또 다른 박(駁)이 예상된다. 양쪽의 갑을 향해, 왜 굳이 이딴 걸 만들어 분란을 사느냐, 따져 묻는 소리가 분명 생길 터이다. 글쎄다. 문학터치는 없는 것보단 낫다는 입장이다. 북한 여성작가 최련(35)의 ‘바다를 푸르게 하라’를 읽고서 굳힌 생각이다. 북한의 환경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짱짱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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