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혁명 파키스탄 르포] 힘 얻은 야당 “무샤라프 내쫓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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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파키스탄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19일 오후(현지시간) 최측근 한 명을 파키스탄인민당(PPP) 아시프 자르다리 총재에게 보냈다. 총선 승리를 축하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내용은 달랐다. 이 측근은 자르다리 총재에게 앞으로 국정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문을 연 후 가능하면 여당과 연정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운을 뗐다. 바로 직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던 자르다리는 즉답을 피하고 당 중진들과 논의해 보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20일 이 같은 소식을 접한 PPP 중앙사무국 이브네 무하마드 리즈비 위원은 “무샤라프가 살기 위한 전술이다. 당에서 이를 받아들이면 절대 안 된다”고 흥분했다.

이날 오전 라호르와 이슬라마바드에서 있었던 두 야당 지도자의 총선 승리 일성은 단호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의 집권 2기를 인정하지 않겠다.”(나와즈 샤리프 PML-N 총재)

“무샤라프의 퇴진이 민주화 첫걸음이다.”(아시프 자르다리 PPP 총재)

기자회견 내내 두 지도자의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무니스 아더 정치평론가는 20일 현지 돈(Dawn)뉴스TV에 나와 “무샤라프 제거 절차를 밟겠다는 신호탄”이라고 해석했다. 총선 결과를 보면 야당의 단호함과 자신감이 이해가 간다. 20일 파키스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피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이끌던 PPP는 연방하원 113석(비례대표 포함)을 확보해 원내 제1당으로 등극했다. 샤리프 전 총리가 이끄는 파키스탄 무슬림 리그-N(PML-N)은 84석. 현재 18석보다 무려 네 배 이상 많은 의석을 확보해 이번 총선의 최대 승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연정을 공언한 이들 두 야당의 의석만 197석으로 연방하원 전체의석(342)의 반수를 훨씬 넘는다. 여기에 군소정당 59석을 합하면 256석으로 개헌과 대통령 탄핵이 가능한 3분의 2 의석까지 넘어섰다.

반면 여당 성적은 초라하다. 현재 118석으로 원내 1당인 파키스탄 무슬림 리그-Q(PML-Q)는 55석으로 원내 3당으로 주저앉았다. 연정 파트너인 MQM과 PPP-S도 각각 25석과 1석에 불과하다.

무샤라프 제거에는 샤리프 전 총리가 더 적극적이다. 1999년 총리 재임 당시 군 참모총장이었던 무샤라프를 제거하려다 쿠데타로 실각했던 그다. 그는 지난해 무샤라프가 대통령 재선 과정에서 행한 모든 정치적 행위가 헌법에 위배됐다고 주장한다. 새 의회가 개원하면 초더리 전 대법원장 등을 가장 먼저 복직시킬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이들이 복직되면 지난해 10월 대통령 선거 당시 군 참모총장직을 겸임하고 있던 무샤라프는 입후보 자격이 없었다고 판결할 가능성이 크다. 제도적으로 군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장치 마련도 그가 주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샤리프 전 총리는 20일 오후 자르다리 PPP 총재를 만나 새 정부가 구성되면 가장 먼저 이 두 문제를 처리한다는 데 합의했다.

우려도 있다. 무샤라프 대통령의 반발이다. 그는 19일 야당의 퇴진 요구에 대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새 정부와 합리적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군도 그의 이 같은 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부정할 경우 참지만은 않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카라치 선거관리위원회 무하마드 칸 부 위원장은 “야당이 너무 서두르고 있다. 이러다가 군에 정치 개입 빌미를 제공해 어렵게 얻은 민주화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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