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작은것이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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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시카고대학 게리 베커 교수의 역저(力著)『인간 자본』(Human Capital)은 사람의 일상생활을 합리적 경제법칙으로 설명,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갑자기 이 책이 필요해 美코넬대학에서 노동경제 학을 전공한中央日報 편집국의 장현준(張鉉俊)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국내에서번역본이 출판됐는지를 물어봤다.대답은 부정적이었다.혹시나 해서교보문고를 찾았더니 역시 번역본은 나온게 없고,외국어 서적관에서 원어판이라도 알아보라고 한다.
외서관의 여직원이 단말기를 두드려 보더니 이 책은 품절(品切)됐다고 한다.
『그러면 이 책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오.』『개인주문은 어렵고,대량주문은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결국 당분간 이 책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이로군요.』『그렇습니다.』 적이 언짢은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세계화가 국정 지표인 한국에서,문화활동이 가장 왕성한 서울에서,국내 제일의 규모를 자랑하는 초대형 서점에서 불과 3년전 노벨상 수상자의 작품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그래서 비록 규모 는 작지만 전문화되고 순발력을 갖춘 서점이 아울러 발달해 고객의 발길을 헛되게 만드는 일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규모의 대형화를 추구하는 우리 경제는 대기업병(大企業病)을 경계해야 한다.비대한 규모 때문에 조직이 동맥경화증에 걸리면 안된다.삼성경제 연구소가 편찬한 연구 보고서 『대기업병』은 이병을 치유하려면 작고 가벼운 조직,작고 강한 본 사(本社)를 만들라고 권고한다.한국의 대기업군이 지금 분화(分化)과정에 들어간 것도 바로 이 병에 걸리지 않으려는 노력의 한가지가 아닐까.
"작은것이 아름답다"의 저자 E 슈마허는 질서가 존중되는 조직에선 생명력이 결여된다고 말한 적이있다. 그는 질서쪽에는 지성과 효율이 있고,자유쪽에는 영감과 창조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후자쪽에 서는 것이 기업가의 할일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의 경영혁신은 기업이 알아서 할일이고,내가 정작 강조하고 싶은것은 큰것에도 허점은 있다는 사실,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큰것에 눌려 지내는 작은것들은 이봄에 좀 기를 펴자고 말하고 싶은것이다. 대기업의 위세에 눌리는 소기업들,조직의 한 부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은 큰것의 허점을 과감히 파고들어야 한다.
알고보면 제대로 운신도 못하면서 덩치만 크다고 사람 기를 죽이는것이 또한 큰 것들이 아닌가. 일본 지자체 선거에서 무당파(無黨派)의 화려한 등장을 보라.자민당의 후광을 입은 후계 정당이나,대도시의 진보세력은 당연히 내편이라던 사회당 등이 모두 고배를 들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큰 것들도 작은 것들의 반란을 맞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빌 게이츠도 언젠가는 내가 따라잡고,핵심 기술을 가진 나에겐 대기업도 머리를 조아릴 것이라는 작은 것들의 반란은 생각만 해도 유쾌하다. 큰것을 꼼짝 못하게 할 "작은 꿈"에게 부디 영광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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