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러시아의 對北접근과 경수로-美에 주도권상실 위기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러시아 보리스 옐친정권은 출범(出帆)초부터 시장경제를 본격 도입, 근본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서방국가들과 관계를 중시(重視)하는 외교정책을 추진했다.그러나 개혁부진에 따라 親서방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즉 러시아의 독자적 외교노선 전개를 주장하는 세력이 부상했다.
그 결과 러시아 외교정책은 독립국가연합(CIS)을 중심으로 하는 근린국가(近隣國家)를 중요시하고 자국 세력권에서 확고한 위상확보를 강조하는 전통노선으로 선회했다.
특히 93년12월 실시된 총선에서 보수 민족주의세력이 하원(두마)에서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됐다.
이러한 시기에 북한과 관련된 두가지 중대사건이 발생했다.김일성(金日成) 사망과 제네바 北-美합의였다.
옐친정권은 한반도 주변 4강중 가장 먼저 김정일(金正日)체제를 승인하는 등 북한체제의 급격한 변경 또는 붕괴를 원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면서 적극적인 대북(對北)우호외교를 전개했다.제네바합의는 러시아로 하여금 북한핵문제 해결 과정에 서 자국의 역할 배제를 경험하도록 만들었다.특히 러시아는 미국의 러시아를고려하지 않는 대북정책 전개를 지켜보면서 북한과 관계를 회복.
강화해 한반도문제에서 미국의 일방적 주도를 견제해야 한다는 반성을 하도록 만들었다.
러시아는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중부및 동유럽에의 확대현상에 의해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동아시아에서도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형성에서 소외당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북한 접근과 관련,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대북 경수로 제공을 둘러싼 러-북한 협력 가능성이다.러시아는 85년 舊소련시절 북한과 「원자력 분야 지원에 관한 협정」을 체결,90년 부지(敷地)선정 작업에까지 참여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를 거부하자 러시아정부는 同협정의 기능을 정지하고 대북 국제공조체제에 참여했다.
北-美 제네바합의로 자신의 운신(運身)의 폭이 좁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자국형 경수로 제공의 당위성을 주 장하고 있다.러시아의 자국산(自國産)경수로 제공 가능성 타진은 기본적으로북한의 러시아형 경수로 선호(選好),한국형 경수로 도입 절대반대의 입장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이간질에 의해 韓美,韓-러관계가 일시적이나마 불편한 관계에 빠져들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한국형이아니면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견지하면서 러시아의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동참을 유도할 필 요가 있다.러시아는 북한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KEDO만으로는 부족하고관계국들의 종합적 국제회의 개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는 있으나중국처럼 북한과 독자적 유대관계를 갖고 있지 못하므로 KEDO운영에 관심을 갖고 있다.향후 한반도 정세변화에 엄청난 영향을미칠 북한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또 한번 소외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기 위해서도 러시아는 KEDO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미국과 러시아에는 경수로 제공 가능성,일본에는 국교정상화라는 유인책을 사용하는 한편 기존의 돈독한 中-북한관계를기초로 한국 고립화를 시도하고 있다.더욱이 국내 권력강화에 부심하고 있는 김정일체제로서는 앞으로 남북관계의 답 보(踏步)내지 냉각화를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이에 대해 우리는 먼저 韓.
美.日 삼각공조체제를 확고히하고 중국과 수준높은 정치대화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러시아를 KEDO편에 서도록 유도하는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연현식 국방연구원연구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