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비준, 노 정부선 물 건너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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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임기 안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하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준 동의안이 상임위인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은 됐으나 처리되지 않고 국회가 휴회를 했기 때문이다. 18일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현 정부 임기 안에 비준안을 처리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지만 공염불이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미 FTA 비준안 처리가 상당 기간 공전하다 무산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거론되고 있다.

◇참여정부 임기 넘길 듯=국회는 19일 본회의를 열어 20~25일 6일간 휴회하기로 했다. FTA 비준안은 이날 본회의에 올라오지도 못했다. 지난 13일 통외통위에 상정된 이후 15일 공청회만 한 차례 열렸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참여정부가 문을 닫기 전에 비준안을 처리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참여정부 임기는 이달 24일까지다.

물론 국회법 조항만 놓고 볼 때 참여정부 임기 안에 비준안이 처리될 수 있는 불씨는 남아 있다.

국회법 8조에 따르면 휴회 중이라도 ^대통령의 요구가 있을 때 ^의장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는 본회의를 재개할 수 있다. 휴회 중이라도 정치권이 합의를 하면 본회의를 열어 비준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야가 이런 극적인 합의를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야는 현재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싸고 강경하게 대립하고 있다. 게다가 통합민주당의 일부 의원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다.

◇18대 국회로 넘어가나=17대 국회 회기는 5월 29일까지다. 그 전인 4월 9일 국회의원 총선이 있다. 이론상으론 3월에 임시국회를 열 수는 있다. 진 의원은 “청문회를 갖기 위해 3월 중 상임위를 열자고 통합민주당과 합의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본회의를 연 적은 없었다”며 “이번에도 2월 국회 폐막 후 4월 총선 전에 본회의가 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은 4월 총선 뒤 임시국회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실현 가능성이 없다. 총선에서 당락의 희비가 엇갈린 국회의원들이 비준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총선에 떨어진 의원들이 FTA 비준안 처리에 협조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도 총선 이후 다음 국회 개원 때까지 임시국회가 열린 사례는 딱 한 번 있다. 1958년 제3대 국회에서다. 하지만 성원 미달로 유회되다 임기 만료로 폐회됐다.

현재 통외통위에 상정된 비준안은 17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이렇게 되면 한·미 FTA는 6월에 18대 국회가 구성된 뒤에야 다시 논의될 수 있다. 정부가 새로 비준안을 국회에 내고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 지루한 절차를 또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른 장애물은 없나=한·미 FTA를 2월 중에 비준해 미국 측을 압박하려는 정부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됐다. 미국 행정부는 아직 비준 동의안을 의회에 제출하지도 않았다. 미국 의회가 여름 휴회기간인 8월 초까지 비준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내년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올 11월에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게다가 한·미 FTA에 다소 부정적인 민주당이 대선에서 집권하면 미국 측의 비준안 처리도 낙관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가운데 쇠고기 문제는 진전이 없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쇠고기 문제 해결 없이는 비준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원웅 위원장은 “정부가 할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국회만 하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측이 한·미 FTA 비준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쇠고기 문제부터 정부가 해결하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면서 미국 의회의 움직임과 연계해 (비준안 처리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은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고 있다.

이상렬·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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