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칼럼

균열 속에 피는 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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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평등파의 현장 리더 격인 심상정과 이론가인 노회찬이 벼랑 끝으로 몰린 것은 민노당의 탄생 배경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2004년 탄핵 정국을 비집고 일약 중앙무대로 등장하는 데 성공한 민노당은 친북파(NL) 지배하에 평등파(PD)와 연합한 신생 정당이었다. 민노총이 산파 역할을 맡았고, 전교조·전농과 같은 민중운동단체들이 조직적 자원이었으며, 진보성향의 지식인·대학생·시민들이 참여했다.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4.3%, 정당선호 13%, 국회의석 10석을 차지해 원내 3당이 되었으니, 한국과 같은 토양에서는 당사자들도 놀랄 만한 화려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태생 속에 감춰진 균열요인은 그때부터 꿈틀거렸다. 1920년대 유럽에서나 가능했던 적녹동맹, 즉 노동자와 농민조직이 함께 어울렸고, ‘민족’과 ‘계급’이 동거했다. 독재정권의 청산이 목표였다면 즐거웠겠으나, 그들끼리도 즐거워할 일은 별로 발생하지 않았고 충돌할 쟁점은 널려 있었다.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그렇다. 농산물 수입개방은 농촌을 힘들게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식비를 줄여주는 호재다. 농민대표 강기갑 의원이 단식을 하고 국회 유리창을 박살내도 대기업 노조들에는 그냥 이벤트일 뿐이다. 민노당 당원의 40%를 차지하는 민노총 노조원들은 자신의 고용안정을 훼손하지 않고는 비정규직 보호 시위에 적극 나설 수가 없다. 북핵 문제는 내부 균열의 뇌관이다. 북한 핵실험을 정당방위로 규정한 주사파의 반제투쟁 노선이 ‘민족’ 개념을 아무리 살려낸들 정치적 자살이라는 것을 평등파는 잘 알고 있다. 심상정 비대위는 일심회 간첩사건을 단죄해 친북파를 통제하려 했는데, 오히려 자신들이 제거당할 위기에 직면했다.

보수화된 현재의 정치환경에서 민노당이 이대로 간다면 4월 총선에서 결국 유권자들에 의해 ‘주리가 틀릴지’ 모른다. 민중운동의 자살이자 민주주의를 추동한 엔진 중의 하나가 꺼질 이 절박한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평등파가 꼬마 정당을 창당하는 것. 벌써 경남·울산·의정부·인천지부 당원들이 모체와의 결별을 선언했고, 이런 움직임이 지부 곳곳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만큼 민노당의 세포분열은 기정사실화되었다. 다만, 언제 초경량급 미니 정당이 태어날 것인지가 문제인데, 태어난다면, 거기에는 ‘한국사회민주당’이라는 간판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회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실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까 그 노신사분께, 그리고 독자들께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사회민주주의는 ‘악의 축’도 아니고, 이미 소멸된 시대착오적 공산주의도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민주주의 앞에 ‘사회’라는 수식어가 붙었다고 혐오할 필요는 없다. 사민주의는 선진화된 자본주의에서 정치적 자유주의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피어나는 꽃이다. 주리를 틀 필요도 없다. 자유주의 없이는 사민주의도 없다. 유럽은 사민주의로 자유와 평등 간 모순을 잘 관리했고 경제성장에도 성공했다.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이탈리아 좌파민주당, 스페인 사회노동당 등 명칭은 다르지만 모두 사민주의 정당이며, 고용안정과 불평등 완화가 불변의 목표다.

한국에서도 사민당이 출현할까? 정당해체·급조·합당 등에 세계적 특허기술을 보유한 한국인 만큼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거대정당과 달리 지역기반과 조직자원이 지극히 빈약한 게 현실이다. 민노당의 주요 지역인 동남벨트와 경인벨트에서 어느 정도 거점을 확보할 수 있을까? 심상정·노회찬 조가 YS·DJ 같은 카리스마도 아닌 바에 중견지도부들이 따라나설까? 그들 자신도 일부 노동 분파, 진보지식인, 대학생, 소수의 시민만 믿고 4월 총선에서 생환할 수 있을까? 균열의 씨는 뿌려졌으나 꽃피기에는 아직 혹한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