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물가 속 가격 파괴 바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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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29면

최정동 기자

“별로 산 것도 없는데 10만원은 금방 넘는다. 아이들 과자 값이 너무 올랐다.”

15일 저녁 이마트 서울 은평점을 찾은 김노경(36·회사원·서울 구산동)씨는 요즘 장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나날이 물가가 오르는 걸 실감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마트가 가격을 내렸다고 선전하는 자체 브랜드 상품을 많이 샀다”며 “다른 브랜
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꼼꼼히 확인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가운데 일부 유통업계의 가격 거품 빼기 경쟁이 불붙고 있다. 가격 거품 제거는 할인점 업계가 주도하고 있다.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은 소비자가 많이 찾는 품목을 자체 브랜드로 대량 납품받아 가격을 낮추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마트는 최근 아동복 브랜드 ‘데이즈키즈(Daiz KIDS)’와 유아 브랜드 ‘데이즈베이비(Daiz Baby)’ 등 4개 자체 브랜드를 새로 선보였다. 회사 측은 이들 브랜드 제품은 기존 유명 브랜드의 같은 수준 제품보다 가격이 20∼50% 싸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이마트는 지난해 10월 자체 브랜드를 붙인 식음료품과 생필품 등을 대거 내놓은 바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불필요한 기능을 빼 가격을 낮춘 TV·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이마트 자체 브랜드로 팔 것”이라며 “현재 삼성전자와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5000개의 자체 브랜드 품목을 판매 중인 이마트는 2010년까지 자체 브랜드 매출 비중을 23%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마트의 공세에 맞서 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자체 브랜드 품목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홈플러스는 3500여 품목, 롯데마트는 3900여 품목을 판매 중이다. 두 회사는 2010년까지 자체 브랜드 배출 비중을 각각 20%까지 올릴 방침이다.

하지만 할인점의 자체 브랜드 제품이 정착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값이 싸면 품질도 안 좋을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다. 증정품에 길들여진 소비자 특성도 자체 브랜드 판매 확대의 걸림돌이다. 자체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싼 대신 증정품 주기 행사를 하지 않는다. 한 할인점의 식료품 판매원인 이지순씨는 “잘 모르는 할인점 브랜드보다 증정품을 주는 잘 알려진 브랜드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아직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자체 브랜드가 정착되려면 홍보를 강화하고 더 파격적으로 가격을 낮춰야 될 것이란 얘기다.

백화점 업계에선 선두업체인 롯데백화점이 의류 가격 거품 빼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0월 ‘그린 프라이스’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의 골자는 입점 업체에 세일 기간을 1년에 90일로 제한하면서 평소 판매가를 기존보다 30% 낮추도록 유도하는 것. 롯데백화점은 제일모직·코오롱패션 등 신사복 입점 업체 모두에 이 가격제도를 도입하도록 한 데 이어 3월엔 고가 여성복과 모피 제품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롯데의 그린 프라이스 제도는 신세계·현대 등 다른 백화점의 신사복 가격까지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백화점은 가격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영업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업체에 매장을 빌려주고 임대 수수료를 받는 대신 직접 제품을 매입해 파는 곳도 등장했다.

수입차 업계에선 대기업인 SK네트웍스가 지난해 11월 병행수입 판매에 나서면서 가격 파괴가 가속되고 있다. 병행수입이란 국내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는 수입업체가 아닌, 일반 수입업자가 물건을 국내에 들여와 파는 것을 뜻한다. 독점 판매권을 가진 수입차 업체들은 그동안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해 팔았으나 SK네트웍스라는 경쟁자의 등장으로 이젠 가격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SK네트웍스는 기존 수입차 업체들보다 10% 이상 싼 가격을 제시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렇게 되자 최근 아우디코리아가 대형 세단 A8의 페이스리프트 모델 가격을 최대 1380만원 내리는 등 수입차 업체마다 많게는 3000만원까지 가격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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