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자녀 곁 맴도는 ‘헬리콥터 부모’ 안 되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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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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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서울대 법대 출신의 김성민(27ㆍ여ㆍ가명)씨는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 주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산다. 하지만 연수원 시험 기간마다 서울에서 어머니가 내려온다. 오전 6시까지 공부를 끝내고 독서실을 나설 무렵 김씨의 엄마는 어김없이 마중 나와 있다. 오피스텔 청소, 빨래, 반찬 마련도 당연히 엄마 몫이다. 연수원에는 김씨 외에도 이와 비슷한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기다려주세요, 아이 혼자 판단하게…”

졸업과 취업의 시즌이다. 하지만 요즘엔 대학 졸업식에서조차 “시원섭섭하다”는 부모를 찾기 어렵다. 자녀들이 여전히 부모의 품에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길을 찾기 두려워하는 자녀들, 그런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모든 것을 점검하는 ‘헬리콥터 부모’가 많아진 탓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자녀가 몇 살이 될 때까지 돌봐야 하는가’를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대답한 부모는 8.6%에 불과했다. ‘대학 졸업 때까지’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46.3%). ‘혼인’(27%), ‘취업’(11.9%)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부모도 적지 않았다. 자녀를 대신해 대학교나 학과를 선택한 부모는 대학교 등록금 투쟁부터 취업박람회, 취업면접까지 쫓아다닌다.

이렇게 자란 자녀는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부장판사는 “서울 특목고-일류 법대 출신의 젊은 판사들일수록 독립적으로 판결문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걱정했다.

헬리콥터 부모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한익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적절한 시점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분리-개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겨난다”며 “만 3세가 되면 조금씩 아이 혼자 판단하는 연습을 시키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부모교육 담당자 양미진 교수도 “늦어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턴 학원을 결정할 때도 아이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마학교의 서형숙 대표,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의 저자 전혜성 박사, 컨설팅회사인 한국메사 채선희 부장에게 아이의 독립성을 키워줄 수 있는 부모 역할에 대해 도움말을 들어봤다.

아이에게 귀를 열어둬라

채선희 부장은 “창의력 검사를 해보면 절반을 넘는 부모가 방향을 잘못 잡고 아이를 닦달한다”며 “이르면 5세부터 최소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아이의 말에 늘 귀를 기울이고 질문하면서 아이의 적성을 파악해두는 게 좋다”고 말한다. 정 모르겠다면 적성검사를 통해 방향을 잡도록 한다. 다만 가이드라인만 주고 세부적인 건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자녀가 어떤 진로에 관심을 보이면 “사람들은 왜 그 사람을 존경할까” “네가 이런 선택을 하면 길게 봤을 때 어떨 것 같니”라고 물어본 뒤 장단점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매주 가족회의를 열어라

전혜성 박사는 “가족의 공동 경험은 추억 만들기 이상의 교육적 소득이 있다”고 말한다. 자녀와 많은 경험을 같이하는 데 가족회의만큼 좋은 것이 없다. 예를 들어 토요일 아침 식사 후 등으로 시간을 정해 두고 자녀가 매주 회의 주제를 준비해 토론을 이끌도록 한다. 의사소통과 리더십 훈련에 좋다. 특히 부모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배우고 자신의 의견이 부모에게 중요하다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매주 쓰레기를 누가 밖에 내놓을 것인가’ ‘밤에 문단속은 누가 할까’ 등 사소한 주제가 적합하다. 부모도 이를 통해 아이에게 요구하지 않고 합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즐길 시간을 충분히 줘라

보약도 너무 많이 먹이면 탈이 난다. 너무 많은 것을 해주려고 하면 아이는 수동적이 될 수 있다. 아이에게 시키는 과제의 양이 적절한지 체크하려면 일주일에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먼저 살피도록 한다. 최소 2~3시간 정도는 심심해서 ‘뭘 해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창의성과 판단력이 한꺼번에 길러진다. 게으른 아이는 머리를 쓰는 법을 배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줘라

“자식만은 뜻대로 되지 않아”라고 푸념하시는지.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맘에 맞게 해야 할 의무가 없다. 아이에게 작은 것이라도 선택하게 한 후엔 기다려야 한다. 엄마들에게 참을성 교육을 실천하는 엄마학교의 서형숙 대표는 “아이 기르는 순간 순간을 음미하라. 정 화가 날 때는 아이의 살내를 맡으며 그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라”고 말한다. ‘직장맘’이 제일 크게 실수하는 건 전화로 아이에게 “A 숙제는 끝냈어? 그럼 이젠 B해야 하는 거 알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어” 대신 “얼마나 즐거웠니”라고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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