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피할 수 없어 … 마르크스도 인정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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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민 기념 강연회’에서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왼쪽 둘째)가 ‘유럽 사회민주주의에 미래는 있는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강연회가 열린 국제회의장에는 400여 명의 방청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강연 후에는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오른쪽 둘째)의 사회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左>, 김수행 서울대 교수<右>와의 토론도 진행됐다. [사진=최승식 기자]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는 “세계화의 부작용과 환경 파괴 등 자본주의적 질병을 치료하려면 경제 성장과 사회 이익을 나란히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통제 없이 활개치고, 자본가가 노동자의 몫을 가로채는 사회에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14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민 기념 강연회’에서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회=중국·인도 등이 무섭게 성장하면서 유럽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사회민주주의가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힘을 잃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27개) 중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곳은 7개로 줄었다. 일부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자본주의 개혁’과 ‘인도주의적 환경 개선’이라는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만큼 용도 폐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잘사는 세상이 됐다고 하나 지구촌에는 수십억 명이 가난에 찌들어 있다. 부자 나라에서는 계층별 불균형이 심각하다. 이런 문제는 시장을 강조하는 세계화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경제 성장과 사회 정의를 나란히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국가 간 소득 불균형이나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지역 분쟁도 공동체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새 사회민주주의 모델 절실=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장에서 보듯 세계화는 세계적 경제 불안을 초래한다. 또 문화의 획일화, 불법 이민 급증, 지구온난화, 테러와 대형 범죄 등을 유발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새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절실하다. 이는 국가적·지역적·세계적 차원의 합의를 필요로 한다.

첫째, 국가적 차원에서 시장이 건강·교육·문화·인류의 존엄성을 침범할 수 없도록 한계를 둬야 한다. 이는 제가 프랑스 총리 시절(1997~2002년)의 모토인 “시장경제는 ‘예스’, 시장사회는 ‘노’”에 잘 표현돼 있다. 경제에서도 시장이 통제 없이 활개치도록 놔 둬서는 안 된다. 공공서비스, 독점금지법, 독립적 규제 당국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민주주의에서 국가는 관료집단이 아니라 국민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최고 정치기관이다. 국가는 낮은 성장률을 감수해서는 안 되며, 저임금 국가에 대응한다고 임금을 낮추는 하향평준화를 용납해선 안 된다. 연구 수준을 높이고, 교육을 확대하며, 새 성장산업을 찾는 등의 노력이 중요하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핑계로 노동자의 임금을 줄여 자본의 몫을 늘리는 잘못된 분배구조도 바로잡아야 한다. 노동자의 몫이 줄면 소비가 줄고, 결국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된다.

둘째, 지역적 차원에서는 EU와 같은 경제공동체를 결성해야 한다. 유럽은 EU 결성으로 일인당 평균소득을 늘렸고, 농업·교통·에너지·연구·환경 등에서 세계화에 맞설 수 있는 정책을 집행할 수 있었다. 한국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등과 경제공동체를 만들었으면 한다.

셋째, 세계적 차원에서는 국제기구와 국제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의 유엔은 테러나 지구온난화 등 지구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석유·석탄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정리=이수기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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