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욕망의 球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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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야구는 미국(美國)에서「내셔널 패스타임」(national pastime)으로 불린다.
온 국민이 여가로 즐기는 스포츠다.
표현에 걸맞게 국민들의 일상생활은 적잖게 영향을 받는다.
선수들의 파업으로 경기가 없을 때면 집수리용품 가게 들이 바빠진다. 주말에 가장(家長)들이 연장을 들고 집주위를 맴돌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을 부드럽게하는 효과도 무시 못한다.프로야구팀이 있는도시의 이혼율은 없는 도시보다 평균 23%가 낮다는 통계도 있다.여성들에게도 어필해 많은 연인들이 야구장에서 첫 데이트를 갖는다.입장료가 싸며,시즌이 길고,야외스포츠여서 갖가지 추억과사연을 엮어낸다.지난 중간선거때 민주당 참패 요인의 하나로 야구파업이 꼽혔다.유권자들이 쌓인 짜증을 현직(現職)들의 재선 거부로 화풀이했다는 분석이다.
이 야구가 날로 사양길이다.관중이 줄고,TV시청률이 떨어져 중계료 수입에 해마다 수억달러씩 구멍이 난다.미식축구및 농구와는 정반대다.동네꼬마들의 야구놀이마저 뜸해간다.스피드시대에 너무 느리고 지루하다는 것이 야구를 외면하는 첫 이 유다.투수의인터벌,타자와의 신경전,주자견제,잦은 투수교체 등으로 3시간을넘기기가 일쑤다.투구후 동작등 경기흐름이 끊기는 수는 게임당 평균 2백50번이다.주중(週中)경기는 이튿날 출근에 부담을 준다.라디오중계 스포츠론 적절치 않다 는 판정도 나온다.
대부분의 구단들이 적자고 연봉때문에 스타급 선수들의 이적(移籍)이 잦아 홈팀에 대한 애착도 시들하다.연봉상한제와 수입금분배를 둘러싼 구단측과 선수노조간의 극한대립은「수십억장자와 백만장자들간의 돈놀음」이란 지탄을 팬들로부터 받아왔다 .「꿈의 구장」을「탐욕의 구장」으로 타락시키면서 그들 자신은 물론 그들이아끼던 야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호쾌한 타격전 못지 않게 팽팽한 투수전도 볼 만하고,「오랜 가뭄끝에 터지는 한방」이 단숨에 갈증을 씻어주는 묘미도 있다.
스피드시대에 이「인내」마저 사라지고 있다.4월을 맞아 시즌오픈의 팡파르는 도처에서 울린다.
뉴욕타임스紙는 최근 한국프로야구수준을 마이너리그에서도 가장 낮은「저급 A」로 분류했다.일본은「AAA」였다.기분은 좋지 않지만 기죽을 이유는 없다.물욕(物慾)에 찌든「고급야구」보다 희망과 인간드라마를 엮어내는「꿈의 야구」가 더 소중 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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