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0통 … MB의 ‘전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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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전매특허인 전화 정치가 또 등장했다. 12일 꽉 막힌 정부조직법 개정안 대치국면을 뚫기 위해 직접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와 전화 통화를 한 것이다. 12분간의 팽팽한 전화 신경전이었다. ‘담판 회동’이나 ‘깜짝 방문’ 등 직접 면담 관행에 익숙한 ‘여의도 정치’와는 달리 이 당선인이 정치적 고비 때마다 즐겨 쓰는 소통법이다.

이 당선인이 하루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어이- 전화 한번 연결해 봐!”라고 한다. 하루에 70통은 기본이다. 지난해 11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대선 출마로 이 당선인에게 위기가 찾아왔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도움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당시 ‘이 당선인이 언제쯤 박 전 대표의 삼성동 자택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기자들은 삼성동 자택 앞에서 진을 쳤다. 하지만 이 당선인의 선택은 3∼4분간의 휴대전화 통화였다. 대선 직전 박근혜 전 대표의 자택을 두 차례나 예고 없이 찾았던 이회창 총재의 행보와는 대비됐다.

이 당선인은 왜 이토록 전화 통화를 선호하는 걸까. 측근들은 “시간을 아끼고 격식을 탈피하자는 실용주의의 또 다른 단면으로 봐 달라”고 말한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해야 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복잡한 의전을 거쳐야 하는 직접 대면보다는 전화 통화를 더 실용적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누군가가 “한번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고 하면 이 당선인은 “뭘 만나? 그냥 전화로 하라”고 말하기 일쑤다. 한 측근은 “이 당선인이 만나서 예의를 차리고 하는 말이나 전화로 하는 말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도 전화 통화를 선호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두바이 방문 때 세이크 무하마드 두바이 통치자가 휴대전화로 실무자에게서 투자 관련 보고를 받는 장면을 지켜본 것도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 당선인은 그래서 “전화하시라”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후보에게 전화하는 것 주저하지 말라. 새벽 1시에서 4시까지만 안 하면 된다”(지난해 10월 시도선대위원장들에게),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나에게 직접 전화하라”(당선 직후 대기업 총수들에게), “내가 못 하면 수시로 전화해 질책해 달라”(지난 설 연휴 때 고향 포항 덕성리 주민들에게) 등이다.

대기업 CEO로 해외 출장이 잦았던 이 당선인은 한밤중에 서울로부터 국제전화를 받는 일이 많았다. 어떤 경우에도 졸린 기색 없이 또렷또렷하게 통화하는 습관을 이때 길렀다고 한다. 급한 일이 있을 땐 누구나 부담 없이 전화로 보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당선인을 모시는 수행 비서들의 휴대전화엔 입력 가능한 1000개의 전화번호가 모두 차 버려 신형 휴대전화 구입을 검토 중이다.

이런 스타일이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대면접촉)’에 익숙한 여의도 정치의 문화와는 동떨어진 부분도 있다. 때론 결례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12일 이 당선인과 통화한 신당 손 대표 측에선 “12분간의 전화 통화로 설득했다고 판단한다면 야당을 대하는 태도에 진지함이 떨어진다”(우상호 대변인)는 불만이 나왔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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