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정주영, 정몽준 그리고 정통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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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의원이 최대 주주인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이봐, 해 봤어?'라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어록을 신문광고에 활용한 데 이어 최근 고 정 명예회장의 생전 모습과 육성을 담은 TV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이 광고는 정주영 회장이 현대중공업의 창업과정을 소개했던 1986년도 중앙대 특강 장면을 담았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건 백사장과 설계도면 뿐이었지만 해외에 나가 당당하게 수주를 했다"는 고 정 명예회장의 육성은 보는 이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재계는 일단 정 명예회장의 도전정신을 일깨우고 보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 광고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중공업이, 보다 직접적으로는 정 의원이, 아버지를 모델로 설정한 광고를 통해 의도했던 숨은 효과를 궁금해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 의원이 지난 11일 아버지의 아호를 딴 '아산정책연구원'을 출범시켰다. 역시 아버지의 아호를 쓰고 있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이사장도 정 의원이 맡아 왔고 이 재단을 통해 정 의원이 '정주영기념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재계 한켠에서는 정 의원의 이같은 '아버지 찾기'가 정통성에 대한 집착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시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의 대북사업을 계승하고 현대정신을 강조하며 정통성을 주창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

정 의원과 현 회장의 정통성에 대한 열망은 아버지 때부터 사용한 '현대' 로고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는 장자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굳이 아버지를 내세우지 않고 '현대' 로고도 쓰지 않고 있는 점과 대비된다.

정 의원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이룩했던 제국을 복원시키겠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을 통해 현대오일뱅크, 현대건설 등을 인수하면 자동차를 제외한 아버지의 제국을 이어 받는 것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거기다 한나라당 최고위원까지 거머쥔 그는 아버지가 못 다 이룬 정치의 꿈까지 완성할 수 있는 위치에 성큼 다가 서 있다. 비록 아버지가 낙점한 후계자는 아니었지만 세상이 인정하는 후계자는 그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가 올 '현대건설' 인수전이 무엇보다 주목된다. 정몽구 회장이든, 정몽준 의원이든, 현정은 회장이든 간에 범 현대가에서 정 명예회장의 분신과 같은 현대건설을 되찾게 될 경우 일개 기업이 아니라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 강기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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