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고수파 VS 금연성공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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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 그저 개인의 기호라기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세계적인 금연열풍이 불고 있는 오늘까지도 흡연을 둘러싼 찬반논쟁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금연에 성공해 ‘새 삶’을 얻었다는 이들. 누가 뭐라 해도 담배 한 가치의 행복을 지키겠다는 이들. 프리미엄이 갑론을박의 사이에서 속내를 들어봤다.


흡연고수파
"행복권도 있는데…인격 침해하면 안 돼"

점심시간 강남구 역삼동의 오피스 빌딩 주변. 추운 날씨에 옷깃을 여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언뜻 둘러봐도 20여명. 여성그룹도 눈에 띈다. 이 건물도 몇 년 전까지는 화장실이나 계단 한켠에서 흡연이 가능했지만 규제가 강화되면서 건물전체에 흡연공간이 없어졌다.

박형열(41)씨는 “담배 한 대를 피우려면 19층을 내려와 추위에 떨어야 하지만 안 피울 수도 없으니 귀찮아도 하루에 수 십 번씩 오르락내리락 한다”며 “환기시설을 잘 갖추면 비흡연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도 실내에서 흡연이 가능할 텐데 무조건 나가라고만 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 말했다. 동료인 서진우(36)씨 또한 “요즘은 담배 피우는 사람을 무슨 죄인 보듯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며 “언론이 너무 금연만 강조하고 흡연자들의 권리는 다루질 않으니 점점 이런 분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흡연자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흡연율 저하’를 명목으로 걸핏하면 오르는 담뱃값도 적잖이 부담이다. 흡연을 금하는 음식점도 하나 둘 늘고 있어 회식이나 모임장소에도 신경이 쓰인다. 흡연가들이라고 무조건 금연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모르는 바가 아니고, 비흡연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 또한 인정한다. 다만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흡연자들은 온라인상에 커뮤니티를 만들고 흡연규제에 대한 찬반논쟁을 벌이거나 흡연 시의 에티켓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2001년 문을 연 인터넷 흡연자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www.ilovesmoking.co.kr)’에는 현재 10만 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활동 중이다. 이 사이트의 운영자 이연익(38)씨는 “애연가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비흡연자들의 행복권을 위한 스모켓(Smoking+Etiquette)은 필수”라며 “공공장소 금연정책에 기본적으론 찬성하지만 금연 일변도로 몰아붙여 흡연자들의 최소한의 권리와 인격을 침해하는 건 안될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술집을 포함한 전체 실내 공간 금연정책에 대해선 “흡연이 가능한 곳과 불가능한 곳을 나눠 지정하는 등 방법이 있음에도 무조건 전체 공간을 금연화하는 건 흡연자들의 인격과 행복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그럴 경우 회원들과 연대해 법적·물리적 대응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외에서 흡연하는 여성이 부쩍 는 것 또한 금연규제 강화와 무관치 않다. 직장인 김선영(여·33)씨는 “주변의 시선도 있고 해서 예전엔 화장실이나 커피숍 같은 곳에서 주로 피웠는데 지금은 워낙 공간이 없으니 그냥 밖에서 피우고 있다”며 “(담배도)기호식품이고 개인의 선택인데 여자라고 안 좋게 보는 인식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T&G와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등 담배제조사들이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에서 운영하는 흡연카페는 애연가들에게 환영받는 공간이다. 대형 제연기를 가동해 담배를 피워도 실내가 쾌적하도록 관리하는 게 특징이다. 여성들도 눈치 보지 않고 편안히 흡연을 즐길 수 있어 20~30대 직장인과 여성들이 주 고객이다.

압구정동의 흡연카페 ‘시가렛’에서 만난 이주영(여·28)씨는 “이러다 우리나라도 담배를 피우러 중국이나 동남아로 나가게 되는 것 아니냐”며 “이런 카페처럼 (제연)시설을 잘 갖춘 공간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이경석 기자 yiks@joongang.co.kr


금연성공파
"사교에 걸림돌…끊고나니 건강 좋아져"

“이제 더 이상 제 손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아요.”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김경희(여·27)씨는 100일 전, 금연에 돌입했다. 자주 피곤하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담배를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담배에 손도 대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만나면서 한 순간에 실천으로 옮겨졌다. 대학 입학 후, 단순히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에 피웠던 것이 6년. 하루 평균 반 갑에 친구들 모임이나 술자리에 가면 한 갑을 훌쩍 넘겼던 그녀가 지금은 “일하던 중간에 담배 피우려고 사무실을 나섰던 것이 업무에 방해가 됐던 것 같다”며 빙긋 웃는다.

물론 아직까지 담배의 유혹에 흔들릴 때도 있다. “순간적인 스트레스가 가장 큰 적이죠. 저도 모르게 한 대씩 피고 싶어지니까요.” 그럴 때마다 동료의 담배를 쥐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또 피고 난 후 입 속에 남아있을 담배 연기와 후회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참는다. “당장의 스트레스 해소는 될 지 몰라도 여러모로 백번 잘 끊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2008년을 새로운 각오로 시작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연초, 많은 사람들이 금연을 계획한다. 국립암센터의 임민경 과장은 “금연상담전화(1544-9030)의 이용률만 봐도 알 수 있는데, 1월에 가장 높은 상담률을 보이고 3월이 가장 낮다”고 설명했다. 올 1월에도 이미 8870명이 금연 상담을 요청한 상태다. 임씨는 “금연에서 중요한 건 개인 의지”라며 “금연 상담프로그램을 통해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고 덧붙였다.

11년 동안 흡연해오던 임찬익(34)씨는 7개월 째 금연에 도전(?)중이다. 지난해 4월, 와이프가 아이를 갖고나서 금연을 결심하게 됐다. 많이 필 땐 두 갑도 피우지만 골초는 아니었다. “고향인 제주도에 내려가면 아예 담배를 물지 않습니다.” 금연 후 임씨는 많은 것을 얻었다. 일단 매일 아침 입속에서 들끓던 가래가 말끔히 사라졌다. 불어난 체중 조절을 위해 시작한 수영도 거뜬히 해내고 있다. 가장 큰 선물은 지난달 15일에 얻은 건강한 아들. 임씨는 “아들 얼굴 볼 때마다 담배 끊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군에 입대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된 담배가 이제는 사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바뀌고 있다”며 금연을 지지했다.

하루에 한 갑 반을 피던 윤경현(37)씨도 6년 째 담배와 담을 쌓고 있다. 중간에 실패한 적도 있다. “무작정 담배를 끊겠다는 일념으로 사탕·초콜릿·과자·껌 등을 준비했어요. 얼마 못 가 스트레스가 쌓이고 체중만 불더니 마음이 약해지더라고요. 2년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윤씨가 재차 금연을 단행하게 된 것도 와이프의 임신 때문이다. “병원에서 뱃속에 든 아기 초음파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후 윤씨는 체내 니코틴 배출에 좋다는 등산을 시작했다. “차츰 두통이 없어지더니 건강이 좋아지더라고요.” 게다가 옷의 주머니도 깨끗해지고 몸에 배어 있던 퀴퀴한 냄새도 사라졌다. 담배 피는 사람과 장소도 조금씩 멀리했다. 회의 석상에서도 가능한 한 환기가 잘 되는 곳에 앉아 흡연 욕구를 절제했다. 주변에선 독한 사람이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부러운 목소리가 높다. 그럴 때 윤씨는 “나 자신 뿐 아니라 가족과의 약속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성인 전체의 흡연율은 해가 거듭할수록 낮아지고 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30.4%에서 2005년 26.4%, 2006년 24.1%로 감소해 작년엔 23.2%까지 떨어졌다. 특히 성인남자 흡연율은 2004년 57.8%에서 지난해 43.4%로 3년 새 눈에 띄게 줄었다.

프리미엄 김혜영 기자 hy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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