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오희주,프로입단 4년만에 제5선발투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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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꿈이었을까….』 눈을 뜨면 지나온 4년이 그저 꿈처럼 느껴진다. 이제 눈부신 햇살을 맞고보니 뒤로 보이는 어둠이 희망을부르는 긴 터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오희주(吳喜柱.LG)가 4년의 긴 방황을 끝냈다.
오희주는 프로입단 4년만에 LG의 다섯번째 선발투수로 자리잡았다.방황도,좌절도 이젠 모두 지나간 일이다.
91년 한양대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할때 吳는 해태에 1차지명됐다.김기태(金杞泰.쌍방울)도,강길룡(姜佶龍.OB)도 모두 吳에 밀려 다른 팀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하지만 입단 1년이 지난뒤 吳는 유니폼을 옷장 깊숙이 처박아 버리고 친구와 장사를했다. 말이 좋아 유통업이지 옷도 팔고 먹을 것도 파는 그런 잡상인이었다.그래도 뱃속은 편했다.야구를 안하니까.
코칭스태프와의 불화로 얼룩진 해태에서의 1년은 정말 싫었다.
결국 20년가까이 해온 야구와 담을 쌓았고 유니폼을 미련없이 벗었다. 다른 구단에서 다시 해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다.OB도 그랬고 삼성도 그랬다.하지만 「노 댕큐」야구는 싫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LG 최종준운영부장을 만나게 해줬다.마침 야구판에서 잘 나가는 동기들을 보면서 특유의 오기가 꿈틀거릴때였다.오랜 고민끝에 「한번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결국 93년2월 吳는 현금 5천만원에 해태에서 LG로 트레이드됐다. LG에서 그는 이왕 다시 하기로 결심한만큼 열심히 했다. 93년4월부터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 3군에 합류해 3개월간 죽어라고 매달렸다.
93년 후반기 입단 3년만에 1군경기에 나갔다.11경기에서 1승도 못올렸지만 가능성은 인정받았다.
희망에 들떠있던 94년은 또 한번의 시련기였다.시범경기 도중제구력이 안된다는 지적을 받고 2군으로 쫓겨났다.결국 또 내일을 기약해야 했다.
여름이 지나고 9월에야 1군에서 연락이 왔다.
세번의 등판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코칭스태프는 吳를 플로리다 교육리그에 보냈다.
거기서 50일동안 다시한번 각고의 시간을 보냈다.
올해 吳는 인현배(印鉉培)의 부상으로 생긴 LG다섯번째 선발투수의 공백을 메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명성(金明成)투수코치는 오키나와 전지훈련 때부터 『다섯번째선발로는 오희주가 1순위』라며 칭찬했고 이광환(李廣煥)감독도 20일 롯데와의 훈련경기를 끝내고 나서 『떨어지는 변화구가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일단은 합격』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이제 방황의 끝에선 吳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변모된 나를확인하고 싶다」는 것이다.
馬山=李泰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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