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장녹수" 인기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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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역사극은 오늘날 공연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마찬가지로 사건의 시간적 배열이 아니다.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가 자신의 서사극 이론에서 지적한대로 사극은 「잘 훈련된」시청자(관객)를 전제로 하고 있다.배경이나 결말 따위가 궁금해 『햄 릿』이나 『한명회』를 보는 관객이나 시청자는 없다는 얘기다.
KBS-2TV 『장녹수』역시 수없이 극화돼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된 연산군의 사랑과 폭정에 얽힌 이야기다.주인공 연산군과 그 애첩 장녹수는 셰익스피어도 미리 알았다면 분명 탐냈을 만큼 드라마틱한 캐릭터를 소유한 인물들.
하지만 시청자들이 그 줄거리에 익숙하다보니 극적인 삶 자체만으로는 그것이 드라마로서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도 불충분한부분이 있다.『장녹수』는 주인공들에게 도덕적으로 모호한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게 함으로써 이같은 딜레마의 해결 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선악이란 이분법적 구도의 한편에 확고하게 서있던 과거의 주인공들과는 분명 다른 것으로 시청자에게 자유로운 상상력 및 다양한 해석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이와 함께 드라마의 시대상과 복식은 달라도 주인공들의 행동거지나 대사에는 오늘날 시점으로 옮겨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현대적 감각이 숨쉬고 있다.그것이 『모래시계』의 폭풍 속에서 건재했고 『호텔』『장희빈』의 거센 도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있는 비결이 아닐까.
李勳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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