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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 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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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10년 여름 강릉 경포대의 바닷가.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는 피서객 앞으로 해안경비대원이 다가온다. 손에는 무단 투기한 쓰레기 봉지가 들려 있다. “쓰레기의 전자태그를 분석해 보니 어제 당신이 산 물건들이더군요. 벌금 10만원입니다.”

전자태그라고도 불리는 무선주파수 인식 기술(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이 보편화되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전자태그 칩의 원리는 간단하다. 전자 칩에 각종 정보를 담고 송수신 안테나를 붙인 것이다. 칩의 정보를 송출하거나, 기종에 따라서는 새로운 정보를 칩에 담을 수도 있다. 문제는 전자 칩을 사람 몸 속에도 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2004년 7월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 정부가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검사와 수사관 160여 명의 몸에 전자태그 칩을 이식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요 정보기관에 출입할 때 보안 및 신원 확인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용된 칩은 미국 ‘베리칩(VeriChip)’사의 제품. 길이 12, 폭 2.1로 주사기를 사용해 팔의 피부 밑에 이식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1월 13일자)는 정부가 가석방 범죄자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전자 칩을 이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칩을 몸에 이식하고 위성을 통해 이동 상황과 가석방 규칙 준수 여부를 감시하겠다는 계획이다.

2006년 미국에서는 베리칩사의 스콧 실머만 회장이 국내 거주 외국인의 몸에 전자태그 칩을 넣자고 주장한 바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국가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미국에 누가 살고 있고 왜 미국에 살고 있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 데 따른 대안이다.

전자태그 칩이 발전하면 생체 칩(bionic microchip)이 된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은 2000년 2월 인체 세포를 전자 칩 회로와 결합시킨 생체 칩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보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피부의 온도변화에 따라 재충전되는 배터리를 내장한 반도체를 이식하기 적당한 위치는 이마와 손등이라고 한다. 성경의 요한 계시록은 말세의 우상숭배를 예언하면서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그의 숫자는 666이니라”고 적고 있다. 바코드에 이어 전자태그에 반대하는 음모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모든 애완견의 몸 속에 마이크로 칩으로 만든 식별장치를 이식해야 한다는 조례안을 3일 발표했다. 동물을 시작으로 언젠가 사람에게까지 확대되진 않을지 왠지 걱정스럽다.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