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층 관객을 끄는 마·력 ·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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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헤어스프레이’의 여주인공 방진의(트레이시 역)는 깔끔한 연기와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극중 캐릭터에 2% 부족하다. 특수분장으로 아무리 살을 찌워도 여전히 날씬한 몸매가 문제다. 트레이시는 뚱뚱한 몸매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10대 소녀. 완벽한 뚱녀로 변신하지 못한 트레이시의 성공이 관객에게 온전한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노년 이야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19 그리고 80’과 ‘러브’는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어설프게 분장한 젊은 배우가 아닌 ‘진짜 노년 배우’들이 무대에 선다. 그들이 들려주는 ‘인생’과 ‘사랑’ 이야기가 깊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19 그리고 80

귀엽고 사랑스런 여든살의 할머니
부드러운 카리스마

“카리스마가 없어졌어.”
한 관객의 귀엣말처럼 뮤지컬 ‘19 그리고 80’ 무대에 선 배우 박정자(모드 역)에게선 예의 ‘카리스마’를 발견하기 어렵다.
대신 ‘죽음의 가벼움’을, ‘인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줄 아는 귀엽고 사랑스런 여든 살의 할머니, ‘모드’로 오롯하다.
 
‘19 그리고 80’은 박씨가 “80까지 공연하고 싶다”고 공언할 만큼 애착을 담은 레퍼토리. 2003년에 이어 2004년과 2006년까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그녀가 주연을 맡아 무대에 올렸다.
‘메시지가 부각됐던 이전의 연극과 달리 들을거리에 중점을 둔’ 이번 뮤지컬에선 노래하고 춤추며 총 9곡의 뮤직 넘버를 선보인다.

장례식장에서 처음 만난 헤롤드에게 들려주는 ‘Round & Round’는 무릎을 베고 누운 손자에게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같이 감미롭다. 얼굴 표정은 물론 손가락 마디, 발동작 하나하나에까지 묻어나는 감정은 그녀가 ‘대배우’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훔쳐 탄 자동차로 신호등도 무시한 채 도로를 달리며 부르는 ‘The Road Less Traveled’에서는 짓궂기까지 하다.
80세 생일에 죽음을 맞이하며 헤롤드에게 남기는 ‘The Chance To Sing’은 “그냥 삶으로부터 크게 한 발 내딛는 일”이라는 그녀의 대사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바라볼 줄 아는 노인의 여유가 느껴진다.
 
‘80세 할머니를 정말 사랑했을까’라는 객석의 물음에 설득력 있는 답을 주지 못한 헤롤드(이신성)의 연기와 노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연급 조연 서지영(체이슨 부인)·이건명·배해선(이상 1인 다역)의 활약은 공연을 한층 맛깔나게 한다. 무대 한켠에 자리한 실내악단은 소극장 뮤지컬의 묘미를 더해준다.

3월 5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화~금 오후 7시30분, 수·토 오후 3시·7시30분, 일·공휴일 오후 4시. R석 4만5000원, S석 3만5000원. 문의 02-577-1987  


러브

60대 배우들의 신나는 춤과 노래
정감이 있어요

“자신이 반으로 쪼개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나요? 사지를 잘라내는 것 같죠. 모든 순간을 함께 한 사람이 사라졌을 때 말입니다….(중략) 사람들은 당신한테 계속 말하죠. 그래도 당신은 살아가야 한다고. 그렇지만 그것도 참 의미 없이 들릴 뿐이에요.”
남편과 사별한 니나(전양자·이주실)를 위로하는 요니(김진태)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김진태의 굵은 저음이 주는 울림 때문만은 아니다. 대사의 의미를 알 만큼 세월을 살아낸 배우여서 그렇다.
 
‘러브’는 젊은 연출가 기슬리 가다슨이 만든 아이슬란드의 뮤지컬이 원작이다. 국내 공연은 ‘명성황후’를 제작·연출한 윤호진 교수(단국대)가 번안하고 연출을 맡았다.
작품은 ‘행복 요양소’를 배경으로 황혼의 사랑을 그린다. 남편과 사별 후 팔을 다쳐 몸이 불편해지자 요양원에 들어온 니나와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요니는 사랑을 위해 도망까지 시도할 정도로 감정에 충실하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오마르에게 쌀쌀하기만 하던 신디는 늦게나마 사랑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낸다.
그 외에도 중증 치매인 아내에게 아름다웠던 사랑의 시절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아돌프, 아내와 요양원에서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는 멋쟁이 신사 피터를 통해 ‘나이가 들어도 생에 대한 애착이나 사랑에 대한 감정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뮤직 넘버는 비틀스의 ‘렛 잇 비’ ‘오블라디 오블라다’, 나나무스쿠리의 ‘온리 러브’ 등 총 26곡. 그 중 14곡을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곡으로 구성했다. 평균 연령 62세의 배우들이 펼치는 춤과 노래는 넘버만큼이나 정감 있다.
빨강·노랑·파랑·보라의 반짝이 의상에 흰색 부츠를 신은 할머니 배우들이 들려주는 아바의 ‘댄싱퀸’은 재미가 색다르다.

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화·목·금 오후 7시30분, 수·토 오후 3시·7시30분, 일 오후 2시. 6일 공연 없음. 7·8일 오후 2시 1회 공연. 5만~7만원. 문의 1544-1555, 1588-7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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