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촌 학교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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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정다운<中>양이 담임 교사인 이연호 선생님으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우리 고장서 서울 법대생이 나오다니 너무나 기뻐요.”

무주군은 인구가 2만6000여명에 불과한 지역이다. 이 작은 고장에 경사가 생겨 전 지역이 잔치 분위기다. 설천고의 정다운(19)양이 2008년학도 서울대 법대 정시모집에서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5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이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곳곳에 축하 현수막이 걸렸다. 무주군 내 5개 고교에서 서울대 법대생을 배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서울대 법대 합격은 학원 하나 없는 ‘깡촌 산골’ 면 단위 학교에서 이룬 것이라 더욱 빛난다. 설천면(주민 4500여명)은 학생수가 급격하게 줄면서 10여년 전부터 설천 중·고교를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전교생은 140여명(중학교는 170여명)으로 1~3학년 각 학년별로 상과계(취업반)·인문계(진학반)를 각각 한 반씩을 운영하고 있다.

3학년의 경우 전체 45명 중 상과계가 16명, 인문계가 29명이다. 때문에 배우는 과목이 다른 문·이과생들이 같은 반에서 함께 수업을 받아야 할 정도로 교육환경이 열악하다. 그런데도 올 입시에서 “법대에 가겠다”며 재수를 선언한 한 명을 뺀 28명 모두가 대학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이 같은 결실 뒤에는 교사들의 열성적 가르침과 주민들의 뒷받침이 있었다.

설천면 주민들은 2005년부터 ‘우리 자녀 내 고장 학교 보내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이 도시로 빠져 나가는 게 인구 감소의 원인이라는 데 착안한 것이다.학부모 장덕정씨는 “아이를 도시로 보내면 한 달에 100만원 가까운 돈이 들지만, 그만큼 성적이 올라간다는 보장도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말했다. 이 해부터는 설천면 학생들은 대부분 지역 중·고교에 진학했다.

주민들을 교육환경 개선 사업에도 팔소매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월 1만원씩 장학금 내기 운동을 해 3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해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 지자체·교육청 등을 끈길지게 찾아다닌 끝에 2006년 4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지었다.

교사들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돌보는 헌신적 지도로 화답했다. 교사들은 정규수업 후에 2~3시간씩 방과 후 수업을 했다. 특히 3학년 교사들은 매일 오후 11시까지, 토·일요일에도 근무하며 아이들을 독려했다. 문·이과 학생이 한 반에 섞여 공부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방과 후 개별지도를 했다.

전체 28명 중 무주읍에 사는 3명을 빼고는 모두 관사에서 사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달려올 수 있도록 관사의 문을 열어 놨다.

서울대에 합격한 정양은 “도서관에 새벽 1~2시까지 남아 경쟁적으로 공부할 정도로 면학 분위기가 뜨겁다”며 “힘들 때마다 선생님들이 용기를 불어 넣어줘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정양은 디스크 수술로 한 달간은 선 채 수업을 받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채홍석 설천고 교장은 “도시 학원 수업이나 고액 과외 지도를 받지 않고 학교 교육만으로 명문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공교육 실험이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글=장대석 기자 ,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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