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 매닝 ‘와일드 카드의 반란’ 일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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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자이언츠 쿼터백 일라이 매닝이 4일(한국시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의 수퍼보울 종료 직전 승부에 쐐기를 박는 역전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킨 뒤 두 손을 번쩍 들고 포효하고 있다. [글렌데일 AP=연합뉴스

‘전성기 때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이 버틀러 더글러스에게 무릎을 꿇은 것 같은 이변이다.’

전 미국이 가슴 졸이며 지켜보던 미국프로풋볼(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시즌 전승 우승 꿈이 한 발짝 앞에서 깨졌다. 뉴욕 자이언츠가 4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피닉스 대학에서 벌어진 42회 수퍼보울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17-14로 꺾었다.

모두들 당연하다고 여긴 패트리어츠의 시즌 퍼펙트 우승을 자이언츠의 ‘미운 오리’ 쿼터백 일라이 매닝(27)이 산산조각 냈다. 일라이 매닝은 지난해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를 이끌고 수퍼보울을 정벌하면서 MVP가 된 페이튼 매닝(31)의 친동생이다. 명쿼터백 아버지(아치 매닝·59)를 둔 형제는 가문에 2년 연속 수퍼보울과 MVP 트로피를 가져왔다.

동생 일라이의 우승이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상대 패트리어츠는 올해 18전 전승을 기록한 무적함대. 반면 일라이는 프로 4년 동안 정상급 쿼터백인 형과 수도 없이 비교됐으며 리더십도, 용기도 없는 약한 쿼터백이라는 놀림감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이언츠는 패트리어츠의 역사상 첫 19전 전승 우승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라이 매닝조차 승리를 자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쿼터백에서 양 팀의 격차가 극명했기 때문이다. 쿼터백 랭킹에서 패트리어츠의 야전사령관 톰 브래디는 117.2점으로 1위, 자이언츠의 일라이 매닝은 73.9점으로 25위에 머물렀다.

시즌 패싱 거리에서도 매닝은 전체 12위에 그쳤다. 인터셉트는 20개로 1위였다. 쿼터백으로서는 치욕적인 수치다. 브래디가 드래프트 199위 출신의 인간 승리라면 매닝은 풋볼 명가에다 드래프트 1순위 출신의 게으른 천재 스타일이다. 브래디는 신데렐라, 매닝은 미운 오리새끼였다.

이날도 매닝은 경기 중반까지 신통치 못했다. 그러나 4쿼터, 그의 몸속에 숨어 있던 풋볼 명가의 피가 끓기 시작했다. 4쿼터 3분50초 그의 날카로운 패스가 와이드 리시버 데이비드 타이리의 가슴에 정확히 꽂혔다. 매닝의 경기 첫 터치다운이자 10-7의 역전. 패트리어츠의 브래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듯 멋진 반격을 했다. 종료 2분42초 전 터치다운에 성공. 14-10의 재역전.

패트리어츠의 완벽한 시즌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매닝이 또 한 번 날아올랐다. 종료 39초를 앞두고 뉴잉글랜드 골문 왼쪽에 있던 버레스에게 13야드짜리 패스를 찔러 넣어 명승부를 마무리했다. 17-14의 대역전극. 매닝은 이날 34개의 패스 시도 가운데 19개를 성공시켜 2개의 터치다운과 255야드를 이끌어냈다. 형인 페이튼 매닝은 “종료 2분42초 전 상대 터치다운으로 10-14로 역전당했을 때 일라이의 표정을 유심히 봤다. 눈에는 근심이 전혀 없었다. 우리는 2분45초나 남아있고 타임아웃도 남아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 차 보였다”고 말했다.

19전 전승, 퍼펙트 시즌을 노리던 패트리어츠는 9회 말 2아웃까지 완봉하다 매닝에게 대역전 홈런을 맞은 격이다. 그리고 패트리어츠는 2007 시즌의 패배자가 됐다.

뉴욕 자이언츠의 승리로 60년 째 뉴욕에서만 트레이너 생활을 해온 존 존슨(90)은 “은퇴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하고 싶다”는 소원을 풀었다.

한편 현대자동차는 이날 3쿼터 때 두 차례 30초짜리 신차 ‘제네시스’ 광고(1편당 300만 달러)를 내보내 미국 시장 개척의 열망을 드러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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