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수영화산책>"쇼생크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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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복역수들이 모여있는 교도소광장에 난데없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가 울려퍼진다.악명높은 교도소장의 사무실 벽엔 「심판의 날이 곧 오리라」는 성경구절을 써넣은 액자가 걸려있다.그리고 무기수인 주인공의 독방에는 요염한 여배우 의 대형사진이 번갈아 걸린다.리타 헤이워드.마릴린 먼로.라쿠엘 웰치등 왕년의 육체파 얼굴들이 20년세월의 감방 벽에 연대기처럼 나타난다. 모든 것이 미국영화다운 발상이다.이쯤되면 억울하게 종신형을 받은 주인공이 한바탕 탈옥극을 벌인 다음 잔인하고도 무서운복수극을 벌이는 것이 정석이나 그게 아니다.탈옥은 예상대로 이루어지지만 그 수법이 너무 밋밋하다.장난감같은 망치 하나로 19년간 벽을 쪼아서 탈출통로를 만든다는 이야기인데 그것도 목적은「자유의 몸」 하나 뿐이다.영화는 탈옥에 성공한 주인공이 고독한 휴식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빠삐용』『도망자』등 탈옥을 다룬 화제작은 많이 있었지만 소재에 비해 활력이 미흡하다.그러나 재미는 떨어져도 스토리 전반이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끈끈하다.특히 은유와 풍자가 뛰어나 어떻게 보면 미국 행형(行刑)제도의 모순을 빗댄 시 대물같기도 하다.죄수들 태반은 변호사에게 속거나 검찰의 편견과 판사의 독단에 희생된 어린 양들로 그려져 있어서 사법관계자들에겐 극장좌석이 바늘방석처럼 느껴질 영화다.질타의 대상은 교도관까지 포함되는데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공권력 모독에다명예훼손죄에 걸려 상영금지를 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손톱만한 죄 하나도 없이 감방에서 젊음을 허비한 주인공은 천신만고끝에 자유를 찾는다.그리고 복수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다만속박없는 편안함만을 추구한다.그에겐 태양이 빛나는 멕시코의 바닷가에서 황폐해진 심신을 달래는 것으로 족했다.
눈부신 태양아래서 외롭게 낡은 배를 손질하며 무념무상에 빠져있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국가권력을 빌려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번쯤봐둘만한 내용이다.범인 열명을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억울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법행정의 교본은 지금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편집담당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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