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올핸 골 세리머니 준비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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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수일이 전지훈련 중인 괌 레오팰리스 리조트 안의 인천 유나이티드 숙소에서 자신의 목표를 적은 뒤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정영재 기자]

강수일이 일본 J-리그 삿포로와의 연습경기에서 공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인천신문 제공]

내 이름은 강수일(姜修一),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난 올해 스물한 살이지만 이래봬도 서울 강씨 시조야. 미국인 아버지와 어머니 강순남 사이에 태어났는데, 호적 신고 때 동사무소에서 서울 강씨로 하라고 했다더군.

난 어릴 때부터 싸움꾼이었어. 이유 없이 “깜둥이”라며 놀려대는 놈들이 미웠고,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전부 내 욕을 하는 걸로 들려 주먹을 휘둘렀어.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몸이 빨랐고 힘도 셌어. 초등 4학년 때 이웃 동두천초등학교에 나보다 싸움을 잘하는 애가 있다기에 혼내주려고 찾아갔어. 그런데 거기서 축구부 감독님을 만난 거야. 그래서 내 축구인생이 시작됐지.

아버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나. 그분은 빛 바랜 사진 속에 학사모를 쓰고 웃고 있어. 주한미군이었던 아버지는 나를 낳고 얼마 뒤에 미국으로 귀국하셨어. 그리고 어머니와 나를 불러들이려고 초청장과 비행기표를 보내셨대. 그런데 어머니가 비행기표를 찢어버렸다고 해. 왜 그러셨는지 난 모르지.

난 동두천중 때부터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어. 별명은 반칙왕. 날 깔보고 비웃는 상대를 향해 백태클을 날리고 주먹도 휘둘렀지. 동두천중·고 시절 날 지도해 주신 강한상 선생님이 달래고, 어르고, 때로 매질까지 하면서 못된 버릇을 고쳐주셨어. 지금은 누가 야유를 해도 웃어넘길 수 있지.

어머니는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취로 사업에 노인 병수발까지 안 해본 게 없었어. 고교 때는 축구부 합숙소에서 밥을 해주고 생계를 꾸렸지.

내가 원주 상지대에 들어간 해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 일을 할 수가 없게 됐어. 난 돈을 벌어야 했고, 1학년을 마친 뒤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테스트를 받게 됐어. 테스트는 3주간 계속됐는데 동두천에서 인천까지 매일 왔다 갔다 했어. 기차와 전철을 갈아타고 세 시간 걸려 인천에 도착한 뒤 빵 한 개로 점심을 때우거나 끼니를 굶고 운동을 했어.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는 너무 힘들어 신문지를 깔고 앉아 꾸벅꾸벅 졸았지.

드디어 합격 통지를 받은 날, 난 어머니를 꼭 안아드리며 말했어. “엄마, 이제부터 내가 잘 모실게.”

첫해 연봉은 1200만원. 한 달에 100만원씩 나오는 돈을 전부 어머니 통장에 입금했어.

지난해 난 시즌 마지막 두 경기에 교체로 출장했어. FC 서울전에는 후반 15분을 남기고 들어가 데뷔전에서 골을 넣을 뻔했어. 그날 어머니가 오셨고, 난 어머니를 위해 골 세리머니도 준비했는데, 슈팅이 골대를 살짝 빗나간 거야. 포항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헤딩으로 어시스트를 해 첫 공격 포인트를 올렸어.

난 지금 괌에서 전지훈련 중이야. 올해 연봉은 2배가 올랐어. 잘 먹고 아무 걱정 없이 운동만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장외룡 감독님도 나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하셨어.

난 뚜렷한 목표가 있어. 올해는 11경기에 출전해 4골 정도를 넣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태극마크를 달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하는 거야.

내가 좋아하는 선수는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 존경하는 분은 미국의 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야. 워드 아저씨가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인순이 아줌마와 함께 만났어. 그분처럼 최고의 선수가 되고,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싶어.

우리나라에서 혼혈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피부색이 다르다는 게 왜 욕을 먹어야 하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사람은 조금씩 다른 것 아닌가.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게 올바른 게 아닌가 싶어.

괌=정영재 기자



스피드·파워 뛰어나 … 마무리 보완하면 큰 선수

 ▶인천 장외룡 감독이 본 강수일

강수일은 성격이 밝고 동료와 잘 어울린다.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뜻을 품고 운동에만 매진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기량도 많이 발전했다. 1m83㎝, 72㎏의 탄탄한 체격에 스피드와 파워가 뛰어나고 공을 받기 위한 움직임이 좋다. 다만 마무리가 부족한 점은 보완해야 한다. 올 시즌 정규리그에는 외국인 선수를 중심으로 공격진을 구성하고, 컵대회에는 신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려 한다. 현재까지는 강수일이 국내 공격수 중에서 가장 돋보인다. 제2의 하인스 워드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열심히 하면 큰 선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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