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유럽의 역사"-사건기술에 민주주의적 시각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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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직후부터 세계 각국에서는 역사를 객관적인시각으로 고쳐 쓰려는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진정한 유럽공동체를 향한 첫 단계로 유럽인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균형잡힌 유럽사를 필요로 했던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이 발족되기 전인 지난 92년 유럽의 역사를 새롭게 쓴책이 선을 보였다.
이어 러시아도 지난해 9월 스탈린 집권시대를 무법시대로 묘사하고 한국전을 북한의 남침이라고 규정하는등 학생들의 교과서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미국에서도 현재 학생들의 역사책에 다양한 문화를 반영하고 유럽및 미국중심적 시각에서 탈피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뜨겁게 벌어지고 있으며 한국.중국.일본의 학계에서도 3국 공동의 역사교과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이런 현실에 서 최근 번역 출판된 『새 유럽의 역사』 (원제 Histoire de l'Europe.윤승준 옮김.까치刊)는 우리의 역사관 수정에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 책은 92년 유럽 각국과 미국등에서 동시 출판된 최초의 유럽공동 역사서다.
이 책 집필에는 자크 알드베르(프랑스).요한 벤더(덴마크).
지리 그루사(체코).스키피오네 구아라키노(이탈리아).디터 티만(독일).로버트 언윈(영국)등 12개국 역사학자들이 참여했으며기획에서부터 책이 나오기까지는 4년여나 걸렸다.
유럽사개론서로 선사시대부터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베를린장벽 붕괴까지 담고 있는 이 책은 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첫 시도인만큼 앞으로 미비점이 많이 드러날 것이고 내용면에서도 새로울 게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구체적 사건을 서술하는데 있어 당사국의 민족주의적 시각을 배제하고 유럽인전체의 시각에서 파악하려는 노력만은 높이 살 만하다.
우선 이 책은 유럽의 정체성을 강조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언어와 문화가 다양하지만 단일문명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로마문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던 에트루리아인과 켈트인들에 대한 설명도 로마문명의 한 원류로서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현대사부분중 2차대전후 80년대 말까지의 서술에서는 이데올로기대립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미국과 소련이 초강대국으로 세계지배를 위해 자기진영으로 더 많은 나라를 끌어들이기 위해 펼쳤던 노력을「패권쟁탈전」이란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또 유럽이 세계정치무대에서 미국과 소련에 주도권을 내주게 된결정적 사건이었던 1차대전 전의 상황을「자기 파괴를 향한 시기」라고 한 것도 흥미롭다.
2차대전 부분에서도 휴머니즘적 시각에서 전쟁에 따른 민간인들의 참상과 인류문화재의 파괴를 집중적으로 설명,전쟁의 악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은 4백여쪽 분량의 책에 사진.지도.삽화등을 5백여장이나 싣고 있다는 점이다.이것만을 살펴도 유럽역사의 줄기가 잡힐 정도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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