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2000>17.냉장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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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에 요즘 같이 난동(暖冬)이 계속돼 한강에 제대로 얼음이 얼지 않았다면 대궐에 큰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당시에는 겨울에 얼음을 떠서 동.서빙고에 저장했다가 이듬해 여름 동안 제사 때나 궁궐 안의 음식에 쓰도록 돼 있었고정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는 반빙(頒氷)제도를 통해 얼음을 나눠줬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시절 고급 관리와 왕족들은 귀한 얼음으로 여름철 찌는 더위를 식힐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음 맛을 볼엄두도 못냈다.
그러나 지금은 가정마다 냉장고에서 손쉽게 얼음을 얻을 수 있으니 조선시대로 치면 최고의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냉장고의 기원은 인류역사의 시작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전국시대에 쓰인 「예기(禮記)」에는 겨울에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쓰는 집을 벌빙지가(伐氷之家)라 부르고 있어 적어도 2천5백년전부터 얼음창고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산에서 가져온 눈을 뭉쳐 벽 사이에 넣은다음 짚.흙.퇴비로 단열(斷熱)한 저장소를 만들어 포도주를 차게 보관하는 데 사용했다.
당시 알렉산더 대왕이나 네로 황제 등은 발이 빠른 사람을 시켜 높은 산의 눈을 날라오게 해 전투나 격투의 승리자에게 찬 음식을 주었다고 한다.
인공 냉동기술은 1748년 영국 글래스고대학의 윌리엄 컬런이에틸에테르를 반(半)진공 상태에서 기화시켜 냉동에 성공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세기 들어 각종 냉동용 압축기(컴프레서)가 개발되다가 스코틀랜드인 제임스 해리슨이 최초의 판매용 냉장고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인쇄공이었던 그는 활자를 세척하다가 세척에 사용하는 에테르가증발하면서 손이 시리게 됨에 착안,1862년에 이를 냉매로 이용한 냉장고를 개발했다.이 냉장고는 때마침 열린 국제박람회에 전시되면서 팔리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해리슨은 「냉장고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
1875년 독일인 린데는 암모니아를 이용한 실용적인 휴대용 압축냉장고를 발명해 신기원을 이룩했다.
그러나 암모니아는 냉동효과는 우수했지만 새어나오면 불쾌한 냄새가 날 뿐 아니라 인체에도 해로워 만족할 만한 대체물질을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 1920년대에 들어서 프레온 가스를 사용한냉장고가 개발되기에 이른다.
스위스의 라올 픽텟은 이산화황을 사용한 냉동기를 개발했는데 이 기계는 나중에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인조 스케이트장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프랑스의 카레는 1877년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사이에 쇠고기.양고기 등 냉동육을 운송하는 데 쓰인 세계 최초의 냉동선 파라과이호의 냉동장치를 설계했다.
당시 대부분의 레스토랑과 가정에서는 「아이스 박스」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 아이스 박스는 한쪽에는 얼음을 넣고 다른 한쪽에는 음식을 넣게 돼 있어 주기적으로 얼음을 갈아줘야 했기 때문에 『얼음 사려』를 외치는 「아이스맨」과 얼음 트럭은 당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최초의 가정용 전기 냉장고는 1918년 美캘비네이터사에서 개발됐고 1930년대에 미국에서 극도로 축소된 압축기가 개발되면서 캐비닛 모양의 상자에 압축기를 장착한 현재 형태의 냉장고가선보이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65년 금성사에서 최초로 국산 냉장고를 개발한 이후 대한전선(現대우전자).삼성전자에서도 생산을 시작해 현재 내수용 2백만대,수출용 1백20여만대의 냉장고를 생산하고 있다. 朱宰勳기자 ◇다음회에는 라디오편이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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