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도 있는데 … ” 장모님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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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정모(30)씨는 최근 양가 부모 상견례 자리에서 예비 장모의 얘기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예비 장모는 “첫째 딸부터 셋째 딸까지 외손자 봐주다 인생 다 보냈다. 더 이상은 외손자를 봐줄 수 없으니 명심하라”고 못 박았다.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 처가에 맡길까 생각했던 정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유정자(65·여·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요즘 외손자 두 명을 돌보느라 하루를 눈코 뜰 새 없이 보내고 있다. 맞벌이 하는 딸이 안쓰러워 3년째 손자들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후회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집에서 5분 거리인 딸네 집 살림을 챙겨 주는 것도 유씨의 몫이다. 유씨는 “딸이 시집가면 손을 덜줄 알았는데 두 집 살림을 하느라 일이 몇 배로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시댁보다 친정, 본가보다 처가와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맞벌이 딸을 둔 어머니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처갓집에 의지해 경제적 부담과 육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젊은 부부가 늘면서 ‘장모 수난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외손자 양육에 사생활을 빼앗긴 장모들의 반란도 거세지고 있다.

◇손자 안 맡는 노하우도 가지가지=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영순(57·여)씨는 2년 전 집 근처로 이사 온 딸이 아이를 봐달라고 졸랐지만 거절했다. 김씨는 “딸이 섭섭해했지만 남은 인생을 애한테 매달려 살 걸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더라”며 “요새 딸 시집 보낸 엄마끼리 모이면 ‘손자 봐주면 바보’라고 놀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외손자 육아 부담을 금전적 도움으로 해결하는 풍속도 생겼다. 장모(56·여·서울 강남구 방배동)씨는 지난해 12월 딸의 출산을 앞두고 딸을 돌봐줄 재택 도우미를 구했다.

산후조리용 음식 마련과 산후 마사지까지 훈련받은 도우미 비용은 한 달에 250만원. 장씨는 “다른 할 일이 많아 나는 자주 찾는 걸로 대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장모들 사이에선 돌봐 주던 손자를 딸에게 돌려보내는 노하우도 회자되고 있다. 손녀(8)와 손자(4)를 4년가량 키워 온 이정순(70·여·경북 경주시)씨는 일부러 험한 말을 자주했다. 드라마를 볼 때면 아이들 앞에서 “저런 우라질 XX가 있나”라고 하거나, 일부러 심하게 화를 내곤 했다. 결국 딸은 아이들을 학원과 유치원에 보냈다.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박진숙(68·여)씨는 딸이 아이를 맡기려 하자 새 직장을 구했다. 박씨는 “공장에서 일하다 정년퇴직 했는데 다시 청소용역업체에 취직했다”며 “딸이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앉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친구들이 모이면 아이들을 할머니들만 있는 노인정에 매일 데려가거나 음식을 입으로 씹어 먹이고, 콩글리시로 영어를 가르치면 딸들이 기겁을 하고 데려간다는 말들도 한다”고 전했다.

젊은 장모들은 양육 대가를 확실히 받는 경우도 많다. 정은숙(56·여·서울 양천구)씨는 “사람을 불러 쓰는 만큼의 돈을 주지 않으면 아이를 안 맡겠다”고 딸 내외와 ‘임금 협상’을 했다.  

◇미혼 남성 54% “처가살이 좋다”=젊은 층에서는 처가에 도움을 받겠다는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전국의 20~30대 미혼 남성 336명을 대상으로 ‘처가살이에 대한 의식’을 인터넷으로 설문 조사해 28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3.9%가 ‘처가살이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맞벌이를 위해 처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80.6%가 찬성했다. 그러나 ‘처가살이 할 경우 가사를 어느 정도 분담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내와 내가 해야 할 몫만큼’이 57.7%, ‘눈치껏 적당히’가 31.8%로 나왔다.

한은화·이현택 기자, 송지영(숙명여대 법학과 3학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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