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바람맞던 날 GM대우선 ‘번개 미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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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9일 GM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을 찾아 조립라인을 둘러본 뒤 근로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29일 인천 부평의 GM대우 자동차 공장을 찾았다. 전날 미리 발표했던 일정에는 없던 ‘깜짝 방문’이었다. 당선인 비서실 관계자는 “어제(28일) 오후 이 당선인이 ‘GM대우 방문 일정을 잡으라’는 지시를 직접 내렸다”고 전했다.

당초 이 당선인은 이날 민주노총 지도부를 만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찰의 출두 요구에 응하지 않자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나 단체와는 만나지 않겠다”며 일정을 취소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에 관여한 혐의로 경찰로부터 출두 요구를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당선인은 민주노총을 방문하기로 한 시간에 GM대우를 방문한 것이다.

많고 많은 기업 중에 이 당선인이 유독 GM대우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GM대우는 5년째 무파업을 기록 중인 기업이다. 그래서 이 당선인이 노조의 불법 행위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민주노총에 보냈다고 인수위 관계자들은 해석했다.

몇년 전만 해도 GM대우는 노사 갈등으로 홍역을 앓았던 기업이다. 2001년 GM이 인수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하자 노조는 포클레인까지 동원한 파업으로 맞섰다. 하지만 그 뒤 노사가 대화를 시작하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차츰 경영이 정상화됐고 2005년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형편이 나아지자 회사는 2001년 정리해고했던 근로자 1605명부터 재입사시켰다.

이후 이 회사의 경영 성적은 더 좋아져 지난 3년간 연구와 투자에만 3조여원을 투입했고 고용도 두 배로 늘렸다. 현재 재계에서 GM대우는 노사 협력→외자 유치→기업 경쟁력 제고→고용 창출과 투자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선순환이 새 정부의 최대 과제인 ‘경제 살리기’를 실현하기 위해 이 당선인이 강조하는 이상적인 구조다.

이 때문에 이 당선인은 이날 GM대우의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유난히 노사 상생문화 정착을 강조했다. 그는 경영진을 향해선 “가장 중요한 건 회사가 근로자들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노조에는 “회사가 노는데 월급을 줄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그런 뒤 양측 모두를 향해 “내 방문이 GM대우차 판매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덕담을 건넸다. 다음은 이 당선인의 주요 발언 내용.

“GM대우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모범적 회사로 발전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앞으로 경제가 어려울 전망이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사가 화합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의 모든 기업이 24시간 2교대로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나는 야간 고교를 나온 뒤 서울에 올라와 막노동할 때 3일에 하루 정도 일할 수 있었다. 그때 소원이 매일 출근하고 월급을 받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종업원이 98명인 작은 회사(현대건설)에 들어가서는 말단인데도 회사 걱정을 많이 했다. ‘회사가 잘됐으면’ 하는 생각과 ‘내가 잘됐으면’ 하는 생각이 5 대 5 정도였다. 신문을 보니까 (요즘 어떤 노조들은) 해고된 사람을 복직시키라고 매일 싸우는데 회사가 잘 안 되면 그런 걸 할 수 있겠나. (GM대우는) 회사가 잘되니까 해고자 복직하고 추가로 고용도 하는 것 아니냐. 5년째 파업 안 하고 있지 않나. 앞으로도 파업 안 했으면 좋겠다.”

남궁욱 기자

◇GM대우=미국의 자동차회사인 GM(제너널모터스)이 부도가 난 대우자동차㈜를 인수해 2002년 설립했다. 부평공장은 2001년 채권단의 구조조정과 해외 매각에 반대하며 공장을 점거하는 등 극심한 파업을 벌여 GM의 대우차 인수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걸림돌로 작용했다. 하지만 GM대우의 닉 라일리 초대 사장은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했고, 2002년 41만1573대이던 판매 대수는 2005년 115만7857대로 급상승했다. 라일리 사장은 2006년 회사가 안정을 되찾자 인수 직전 정리해고했던 1725명 중 복직을 원하는 1605명 전원을 복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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