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선 '安風' 진실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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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96년 신한국당이 안기부 예산 940억원을 총선 비용으로 썼다는 '안풍(安風)'사건으로 기소된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 강삼재(姜三載)의원과 김기섭(金己燮)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27일 항소심 재판에서 서로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며 설전을 벌였다.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7부는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다음달 12일 증인으로 소환했다.

우선 金씨는 지난 23일 재판부에 낸 진술서 내용대로 "당시 姜의원을 시내 호텔에서 만나 직접 안기부 예산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금을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서 직접 받았다"고 지난 6일 재판에서 진술했던 姜의원을 겨냥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밟고 넘어가거나 배신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공격했다. 그는 "姜의원은 金전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43세의 나이로 여당 사무총장이 된 사람 아니냐"고 꼬집기도 했다. 갑자기 진술서를 제출한 이유에 대해선 "그동안은 姜의원이 무죄를 받게 하기 위해 말하지 않았던 것인데, 姜의원이 엉뚱한 진술을 하는 것을 보고 진실을 밝히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姜의원은 안기부 돈을 자신에게 직접 줬다는 金씨의 주장에 대해 "어안이 벙벙하다. 모든 것이 가공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조차 못 느낀다"고 일축했다. 또 "金전대통령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공개한 이후 때로는 '잘했다'고 생각했다가도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는 마음에 고민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인생의 스승을 배신해 거짓 진술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도 내 행동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金씨와 姜의원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에게서 회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金씨는 "2001년 1월 처음 구속된 이후는 물론 지난 1월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풀려난 뒤에도 가까운 사람들이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찾아와 '대선 잔금이라고 하라'고 계속 회유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姜의원은 "지난 1월 말 金씨가 전화를 해 '무죄인 것 안다. 지금까지 참은 만큼 조금만 더 참아라'면서 은근히 진실 공개를 만류했다"고 맞받아쳤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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