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전통·근대화 잇는 다리(實學)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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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를 시작으로 지난 20년간 40여권의 저술을 쏟아낸 김용옥 중앙대 석좌교수를 우리 사회에선 언제부턴가 그냥 '도올'이라 부른다. 그를 우리 사회에서 '도올'이라는 하나의 코드로 통하게끔 한 단 한권의 책을 꼽으라면 단연 '독기학설(讀氣學說)'이다. 1990년 처음 출간됐을 때 이 책은 우리 학계에 던져진 하나의 핵폭탄이었다. 그리고 도올에 대한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를 당당하게 버티게 해준 자존심의 근원지였다. '독기학설' 이 내용을 다듬고 새 포장을 해 14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독기학설'이란 제목은 ''기학(氣學)'을 읽고 말한다'는 뜻이다. '기학'이란 조선 후기 실학자 혜강 최한기(1803~1877)의 필생의 대작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마치 '독기(毒氣)'를 품은 것처럼 '독기학설'의 콘텐츠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실학(實學)'이라 불리는 20세기 우리 학계의 거대한 건축물을 일거에 허물어뜨리는 파괴력을 과시했다. 그리고 도올의 '실학 개념 비판'은 14년이 지난 오늘 많은 젊은 학자들 사이에서 '근대성 비판'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다.

그런데 박지원.홍대용.박제가.정약용 등 조선 후기를 빛낸 학자들의 공통분모라고 배운 '실학'이란 개념이 왜 비판받아야 하는가. 실학은 부패해 가는 조선 후기 사회를 갱신하려고 했던 개혁사상이 아니었던가. 정약용 등의 역사적 실체와 성과를 도올이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문제를 제기한 것은 200년 전의 역사를 바라보는 오늘 우리의 사관(史觀) 그 자체다.

냉전시절인 1980년대까지 우리 학계 전반을 지배했던 이론 가운데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자본제로의 발전'이란 도식이 있다. 골수 보수주의자라 해도 마르크스가 제시한 그 가설을 거부하지 못했다. 거부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의식하지 못했던 시대였다. 더욱이 일제 식민지배의 영향을 부정해야 했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 이전에 우리의 능력으로 근대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근거를 마련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1920~30년대부터 우리 역사에 새로이 등장한 전제가 바로 '실학'이란 개념이었다. 그것은 치욕의 시대 우리의 자존심을 지탱해준 기반이었다.

실학을 기준으로 역사를 역류해 올라가다 보면 근대 이전인 조선 사회는 당연히 중세 봉건제 국가가 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중세 유럽의 봉건제를 조선 사회에 적용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조선은 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사회였다는 것이 도올 주장의 골자다.

게다가 일본 역사에는 유럽식 봉건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봉건제에서 자본제로의 이행이 일본사에서 설명되니까, 그 도식을 우리 역사에 대입한 것뿐이지만 그 차이가 엄청났던 것이다. 일본을 통해 서양을 배웠던 20세기 우리의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자화상이다.

이 책의 연장선에서 이번에 새로 출간된 '혜강 최한기와 유교'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독기학설'이후 혜강의 삶과 사상에 대해 발표했던 글을 모았다. 아울러 도올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주제 아래 텔레비전에서 강의하고 있는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도 함께 볼 만하다. 새로운 건국 이념으로 주자학을 내세웠던 조선 초기를, 혜강이 살았던 멸망 직전의 조선 말기와 대비해 보는 일이 흥미롭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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