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31> 예수님의 가장 큰 이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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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1 :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맞바람이 불고, 파도도 거셌죠. 새벽이 되자 뭍에 있던 예수님이 배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호수 위를 걸어서 갔습니다. 제자들은 놀라서 “유령이다!”라고 소리쳤죠.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죠.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은 “오너라”고 하셨죠. 베드로는 배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물 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거센 바람을 보자 두려워졌죠. 그리고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허우적대는 베드로의 손을 잡으며 말했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으냐?”

 #풍경2 : 예수님께 사람들이 몰렸죠. 그러나 외딴 곳이라 먹을 게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겐 빵 5개와 생선 2마리가 전부였죠. 예수님은 그걸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광주리 12개 분량이 남았습니다. 음식을 먹은 이들은 여자와 아이들을 빼고, 남자만 세도 5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예수님은 많은 이적을 보이셨죠. 성경을 보면 죽어가던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시고, 결혼식장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또 죽었던 자를 다시 살리고, 무덤에서 몸소 사흘 만에 부활하기도 하셨죠.

 ‘이적’을 어떻게 보시나요.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도 시각은 갈립니다. 사람들은 “그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징표”라고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적의 능력은 당연한 게 아니냐”는 겁니다. 이에 대한 반박도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 사후에 기록됐다. 그래서 ‘이적’에 대한 내용은 덧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가공된 이야기’란 거죠. 또 어떤 이는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님은 몸의 부활이 아니다. 영적 부활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고 말합니다.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각자 입장에 따라 ‘주의’와 ‘분파’가 갈리기도 합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논쟁은 늘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현문우답’은 궁금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적이 사실이냐, 아니냐’에만 매달릴까요. 왜 ‘몇 토막의 생선과 빵으로 수천 명을 먹이는 게 가능할까’만 따질까요. ‘현문우답’의 관심사는 ‘진짜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적 일화를 ‘누가, 왜 만들었나’도 아닙니다. 대신 ‘현문우답’은 베드로를 묵상할 뿐입니다.

 어떤 베드로냐고요? 물에 빠지는 순간의 베드로죠. 물 위를 걷던 베드로와 물에 빠진 베드로는 다르죠. 무엇이 다를까요. 그렇습니다. ‘두려움’이죠. 물 위의 베드로에겐 두려움이 없고, 물 속의 베드로에겐 ‘두려움’이 있죠. 성경에도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돼 있습니다.

 그 ‘두려움’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답을 찾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두려움’은 수시로 올라오니까요. 그 바닥을 보면 알죠. 두려움은 어김없이 ‘나’라는 자아, ‘나’라는 에고가 생존의 위험을 느낄 때 뿜어져 나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물 위를 걷던 순간에는 ‘나’가 없었겠죠. 예수님 안에서 ‘자아’를 모두 내려놓았겠죠. 그런데 거센 바람을 보자 베드로는 겁이 났겠죠. ‘나’라는 에고가 죽을까봐 말입니다. 그래서 내려놓았던 자아를 다시 잡았겠죠. 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죠.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그렇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는 순간에는 늘 ‘자아’가 올라옵니다. 그때는 멀어지죠. 예수의 숨결, 예수의 평화, 예수의 생명력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래서 ‘현문우답’은 ‘이적 이야기가 진짜냐, 아니냐’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묵상할 뿐이죠. ‘생선과 빵’ 일화도 마찬가집니다. 그걸 나누던 예수님의 마음, 빵을 쪼갤 때의 온유함을 짚어볼 따름이죠.

 그럼 예수님이 보이신 가장 큰 이적은 뭘까요. 그건 물을 포도주로 바꿈도, 맨발로 물 위를 걸음도 아니겠죠. 우리가 ‘자아’를 비운 곳으로 밀려오는 온유함. 세상에 이보다 큰 이적이 있을까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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