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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천잡음 커질수록 국민은 멀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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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공정한 공천’ 원칙을 재확인했다. 겉으로만 보면 공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정도(正道)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불이 꺼진 건 아니다. 문제는 실천이며 상호 신뢰다. 당은 공천심사위 구성과 후보 평가, 공천자 선택의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정치(精緻)한 기준과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당이 이를 잘못 처리하면 불길은 커진다. 박근혜 세력의 탈당과 신당 창당 또는 이회창+박근혜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새 정부는 큰 위기를 맞는다. 그렇지 않아도 눈앞엔 난제가 많다. 정부조직 개편과 한·미 FTA 비준을 성사시켜야 한다. 당선인은 올해 성장 목표치를 6%로 내렸지만 세계 경제가 요동치면서 이마저 크게 위협받고 있다. 집권세력이 똘똘 뭉쳐도 파도를 헤쳐나가기 힘든데 쪼개지면 어찌 되겠는가.

공천 갈등이 매번 반복되는 것은 제도 탓이 크다. 중앙당의 하향식 공천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 영국에선 지구당 당원들이 심사위원회를 만든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후보들을 대상으로 면접도 보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나 연설 솜씨를 살펴본다. 최종적으로 투표로 공천자를 정한다. 미국에서도 공천은 철저히 지역 몫이다. 힐러리가 됐다고 해서 오바마를 지지했던 당원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우리도 지역 경선 실험이 있었다. 그러나 부작용이 많았다. 신인이 불리하거나, 돈이 뿌려지거나, 경선 후 파벌 부작용 등이 있었다.

중·장기 목표로 한나라당은 공천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선거 후라도 바로 착수해야 한다. 이번 공천은 그 개혁을 위한 준비다. 당은 공정하고 단호하게 하라. 다수 유권자는 지역이나 당의 지지도 뒤에 숨어 있는 무능력·구태 인물의 물갈이를 원한다. 당선인 세력이든, 박근혜 세력이든 공정한 물갈이에 승복해야 한다. 세력의 이익만을 생각해 공천 개혁을 거부하거나 분란을 만들면 국민은 순식간에 당에 대한 지지를 깎아버릴 수 있다.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국회 과반수가 굴러떨어지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