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CF가 음악에 빠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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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정보기술(IT)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해 직원들이 봉사의 손길을 내미는 내용의 KT 기업이미지 광고. 잔잔한 감동이 묻어나는 화면 위로 친숙한 멜로디의 팝 명곡이 흐른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맨’이다.
 
“싱 어스 어 송(Sing us a song), 유 아 더 피아노맨(You are the pianoman). 싱 어스 어 송 투나잇(Sing us a song tonight)….”
 
‘피아노맨’을 원곡 그대로 광고에 사용하는 데 쓴 비용(저작권료)은 대략 1억5000만원(1년 계약)선이다. 빌리 조엘의 노래가 국내 광고에 사용된 건 처음이다. 웬만한 모델료를 뺨치는 액수다.
 
저작권료가 1억원이 넘는 음악을 사용하는 광고가 등장하고 있다. 최근 삼성그룹 이미지 광고에 들어간 엘튼 존의 ‘유어 송(Your Song)’ 저작권료도 ‘피아노맨’과 비슷한 수준인 1억5000만원(1년 계약)으로 알려졌다. 이런 추세는 SKT가 2년 반 전 기업 PR 광고에 비틀스의 명곡 ‘렛잇비(Let It Be)’연주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이후 계속 확산되고 있다. 비틀스 곡의 저작권료도 엘튼 존·빌리 조엘과 비슷했다. SKT는 ‘렛잇비’를 다양하게 변주해 쓰고 있다.
 
광고주들이 값비싼 팝 명곡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들 노래가 세대에 상관없이 친숙하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제일기획 이정은 차장은 “기업 PR 광고나 이미지 광고의 경우 톱 모델을 쓰는 대신 사용료가 비싸더라도 사람들의 귀에 인상적으로 다가가는 노래를 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휴머니티를 소재로 한 광고가 늘어난 것도 잔잔한 감동을 주는 팝 명곡들에 대한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광고대행사 TBWA코리아의 김영인 차장은 “비틀스 등의 팝 명곡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기억되기 때문에 휴머니티 광고에 자주 사용된다”며 “여러 형태로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도 팝 명곡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억대까지는 아니지만, 저작권료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팝송도 많다. 예컨대 그룹 퀸의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와 ‘플레이 더 게임(Play The Game)’은 각각 삼성그룹 광고, 현대카드 광고를 타고 있다. 카펜터스의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와 ‘싱 어 송(Sing A Song)’도 각각 네이버·휘센의 광고에 사용됐다. 폴 포츠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두산위브 아파트 광고에 얹혀졌다. 단, 비틀스·카펜터스의 노래는 광고에 원곡 그대로 쓸 수 없어 리메이크나 연주 버전이 많이 사용된다.
 
업계는 이런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광고음악감독 강재덕씨는 “영화처럼 광고에서도 음악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워낙 저작권료가 비싸서 손도 대지 못했던 음악도 조만간 광고와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음반사 소니비엠지의 디지털팀 정규호 차장도 “저작권료가 2억~3억원에 달하는 마이클 잭슨·스티비 원더·엘비스 프레슬리의 곡도 광고에서 듣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마이클 잭슨의 ‘유아 낫 얼론(You Are Not Alone)’은 2005년 휴대전화 광고에 등장할 뻔했으나 비용상의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광고음악도 ‘때깔’이 결정짓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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