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문민정부 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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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25일로 취임 2주년을 맞는다.「김영삼 정부」 2년을 정치.경제.외교 안보 분야등을 중심으로 교수좌담회를 통해 평가해 본다.
▲길승흠(吉昇欽.서울대.정치학)교수=현정부의 업적 평가는 국민 지지도라는 관점에서 보는게 비교적 객관적이라 생각합니다.김영삼정부는 첫해 80~90%라는 높은 지지율을 보였습니다.그러나 지난해부터 인기도가 40%대로 뚝 떨어졌으며 간혹 40%에도 못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정진위(鄭鎭渭.연세대.국제정치학)교수=문민정부의 탄생은 세계적인 평가를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이런 바탕에서 金대통령은 부패척결과 공직자 재산공개등 사회.정치개혁은 물론 금융실명제등경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이런 점에서 출범 초 높은 지지를 받았다고 봅니다.
▲김영호(金泳鎬.경북대.경제학)교수=김영삼 정부는 아시아 지역에서 식민지나 반식민지 경험을 가진 나라중 산업화과정을 거쳐민주정부를 세운 첫 케이스입니다.
집권 첫 해에는 각종 개혁조치를 잘 취했습니다만 지난해 봄 이회창(李會昌)총리를 전격 경질한 이후부터 시행착오가 두드러졌다고 봅니다.
항간에선 金정권을 두고「우물안 고래」라고 지적합니다.우리나라의 능력은「개구리」보다 큰「고래」인데 정치하는 틀은 우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죠.
▲吉교수=지지도가 낮아진 이유로 우선 정치개혁의 어려움을 들수 있겠죠.군사정권 치하에서 몸에 밴 관행은 금세 고쳐지지 않으며 공무원의 복지부동도 뿌리가 깊습니다.6共때 구성된 국회는민정.공화계 의원들로 가득차 있고,이들이 金대통 령 개혁을 잘따라줄리 만무했습니다.정치개혁에는 비전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鄭교수=외교 안보.통일쪽도 기대에 못미치긴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대북(對北)관계가 그랬죠.北핵문제 해결에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고 외교정책도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金교수=국제적으로 볼때 워싱턴.베이징(北京).도쿄(東京)를중심으로 일어나는 움직임에서 우리는 겉돌고 들러리만 섰습니다.
亞太경제협력체(APEC)에서의 우리 역할에도 국내평가와 외국평가의 갭이 너무 큽니다.
▲吉교수=인정할 것도 많습니다.금융실명제.정치개혁등의 조치는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안기부의 단체장선거 연기 검토 물의와 관련해 김덕(金悳)부총리를 전격 해임한 것은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개혁 의지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반증한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鄭교수=金대통령 집권 2년의 평가에는 상황적 어려움도 감안해야 합니다.출범 당시는 국제적으로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새 질서가 형성되는 유동적인 상황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국내적으론 기대는 잔뜩 충만했지만 잘못된 관행이나 의식.정치 풍토는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金교수=金정권의 과제가 어려운 것이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그러나 「권위주의를 극복해도 또다른 권위주의에 부닥친다」는 개도국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정권은 독재 반대 투쟁에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민주국가 건설에 대한 노하우는 부족했던 것같습니다.다만 실명제등 개혁조치는 한국자본주의의 고리대(高利貸)적.지대(地代)적 정치지향형 색채를 상당히 불식시켰습니다.
▲鄭교수=정책의 일관성 유지에 문제가 많았다고 봅니다.통일부총리의 경우 金정부 출범후 벌써 4명이 경질됐습니다.통일.외교안보팀 좌장의 평균 임기가 짧아서야 장기적 안목에서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할수 있겠습니까.
▲金교수=경제쪽으로 화제를 돌려보죠.김영삼 정부가 출범할때 가장 불안했던 부문이 경제였습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가장 성공한 분야가 경제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행운도 뒤따랐습니다.경제가 밑바닥에 있었고,상승을 예비하는 시기에 새정부 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지금은 수출과 설비투자를 핵으로 하는,상당히 바람직한 형태의 호경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정부정책에 재벌.중소기업.노동자.농민.소비자 모두가 불만을 품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吉교수=그 점에서 경제의 어두운 구석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능률.효율만 보지 말고 호황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고있는 경제 주체나 기업.업종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우는 정책이부족했습니다.일부에선 경제의 新보수주의화 경향 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鄭교수=정치문제로 다시 돌아가 新권위주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 보죠.金대통령에 대해 왜 이런 지적이 나올까요.
▲吉교수=문민정부라고 하나 한국사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권위주의의 유산 때문이라고 봅니다.문화적 배경도 무시못합니다.
金대통령도 권위주의 문화 속에서 반독재 투쟁을 해온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金교수=金정권에 대한 평가 가운데 재미있는 것중 하나가「극장(劇場)국가론」입니다.말하자면 대통령이 무대에서 주연배우로 등장하고,국민은 관객이 돼버린「관객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죠.「깜짝쇼」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현정부로서는 아픈 부분이지만 지난 2년동안 이것이 관행화됨에따라 정치적 통합에 부작용으로 작용했습니다.그런 점에서 한국민주주의가 관객민주주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입니다.국민의식의 성숙도도 중요하겠죠.
▲吉교수=국민의식의 성숙문제는 먼저 투표의식이 높아져야 합니다.유권자가 지역의식을 떠나 투표하는 풍토부터 조성돼야 합니다.이것은 일단 정치엘리트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정치분야에서 지난 2년간은 고질적 폐단인 인맥중심의 정치가 오히 려 더욱 강화된 것같습니다.JP신당에서 보듯 이념이나 노선보다는「헤쳐모여」식이 된 것은 정치개혁의 의미를 오히려 퇴색시켰습니다.
▲金교수=저는 문민정권의 新권위주의를 현실과 비정상적이었던 법의 갭에서 찾아봅니다.엄격한 법체계와 현실의 갭 속에서 미운사람만 걸려드는 상황이 민주정권 이후에도 권위주의가 활약하는 법적 도구가 되는게 아닐까요.
▲鄭교수=권위주의는 크게 보아 중앙집권적인 제도측면에도 이유가 있습니다.또 대통령중심제아래서 삼권분립이 제대로 활성화되지않았다는 점입니다.이것은 金대통령이 과거 군사정부시절의 통치자와 마찬가지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야당이나 의회의 역할을 너무 무시하고 독주했다는 비판과 맥락이 같습니다.
▲吉교수=그러면 이제 金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해결할 과제와 전망쪽으로 얘기를 돌려보죠.남은 3년동안 새로 틀을 만들기보다만들어놓은 정치관계법.공직자윤리법.금융실명제등 개혁조치를 제대로 집행해 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이 점에선 정권재창출을 위해 무리수를 안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鄭교수=통일을 업적으로 삼아선 안됩니다.남북대화는 정상회담을 포함해 당분간 어렵지 않겠습니까.정상회담을 서둘러선 안되고북한의 변화를 점차적으로 유도하고 정해진 정책을 추진해가며 조바심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金교수=지금 중요한것은 관객민주주의가 아니라 참여민주주의입니다.이 점에서 신한국.세계화보다 사회.경제적 통합의 틀을 만들어내는게 중요합니다.
그동안 金대통령만큼 강력한 파워를 가진 대통령이 있었습니까.
문제는 이것이 과연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바람직한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이 점에선 대통령의 책임외에 강력한 야당과 시민사회의 견제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그게「바다속의 고 래」로 가는길입니다.
〈정리=李相逸.朴承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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