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칼럼>관철동시대23.네웨이핑 소설같은 인생역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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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4월28일의 제2국에서 白을 쥔 녜웨이핑(섭衛平)은 완벽한 힘을 보여줬다.그는 영화속의 로마군처럼 큰 방패를 일열로 세우고 창날만 내민채 착착 진격해 조훈현을 쓰러뜨렸다.이리하여 승부는 1대1.
이날 중국의 TV는 저녁내내 바둑 해설을 내보냈다.문화대혁명시절 바둑은 4구(四舊)의 하나였다.4구는 왕후장상.사대부.자산계급.악취나는 유산을 말하는데 바둑은 악취나는 유산의 하나로척결의 대상이었다.섭의 스승은 백해무익한 인간으 로 몰려 죽음을 당했고 섭의 아버지는 머리를 빡빡 깎인채 반동분자의 팻말을가슴에 달고 끌려다녔다.섭은 중국인들이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둥베이(東北)지방으로 끌려가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의 산하 농장에서 돼지우리 당번을 했다.
섭은 훗날 자신의 전기에 이렇게 썼다.
『농장의 생활은 지옥같았지만 그곳 광활한 평원에서 낙조를 지켜보며 나는 두가지 큰 선물을 받았다.대자연의 신비한 장관앞에서 슬픔과 외로움,은혜와 원수등은 하잘것 없었다.나는 시련속에서 투지와 끈기를 배웠고 대자연속에서 심성이 정화 되는 것을 느꼈다.』 대자연의 가르침을 섭이 끝끝내 잊지 않았더라면 그는정말 무적이 되었을지 모른다.하나 섭은 어느덧 영웅이 되었고 중국전체에서 서열4백위 안에 드는 공산당원이 되었다.넓은 대국관은 아직 변함이 없었으나 「교만」 이라고 불리는 승부의 천적이 섭의 재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중국사람들은 섭의 성격을 물으면 침묵했다.밤에 술집의 귀퉁이에서 한 젊은 기자가 이렇게 수군거렸다.『그는 거만해요.』 2백여년전 일본의 명승부 토혈국(吐血局)이 진행중일때 혼인보 쇼와(丈和)는 한밤중에 바둑판앞에서 큰소리로 장탄식하곤 했다.제자들이 놀라 가보면 지린내가 물씬했다.쇼와는 대국의 중압감에 오줌을 지린 것도 모르고있었다. 아마도 그이후 최대승부라 할 잉창치배 결승전이 펼쳐지고 있는 중국의 항저우(杭州)에서 조훈현은 마치 평범한 관광객같았다.曺9단은 수목이 아름다워 정감이 넘치는 거리를 무심히 걸어다녔다.화창한 봄빛과 가슴저미는 시후(西湖)의 풍광, 미니스커트차림의 호기심어린 눈빛들이 어울려 거리는 바람기가 살짝 든 시골처녀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曺9단은 관광온 사람처럼 쾌활하게 그 속을 걸어다녔다.
그러나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제2국에서 재무장하고 나타난 섭9단은 상상외로 강했다.그 섭의 모습이 검고 강한 능선처럼,한마리의 거대한 곰처럼 그의 뇌리에 각인돼 있었다.아무리 흔들어도 쓰러지지 않을 것같은 한마리의 거대한 곰 .
제3국은 5월2일,장소는 저장성(浙江省)의 항구도시 닝보(寧波).기차를 타고 5시간만에 이곳에 도착했다.기차에서 내렸을 때 처음엔 데모가 난줄 알았다.무수한 사람들이 환호하며 역구내를 발디딜 틈도 없이 메우고 있었다.그들이 잉창치 (應昌期)와섭9단을 에워쌌다.그 환호에 우리 일행은 기가 질려버렸다.應은감격한 얼굴이었다.
이곳은 應의 고향.그는 58년만에 다시 찾은 이곳에서 3,4,5국을 모두 치르려고 했으나 한국기원이 끝까지 반대해 3국만치르게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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