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공원, 토종동물 테마파크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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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골 외딴 굴피집 지붕에 커다란 시베리아 호랑이가 입맛을 쩝쩝 다시고 앉아 있다. 영락없이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하던 그 호랑이다.

그 옆으로 바람소리도 스산한 대나무 숲을 지나 여우고개를 넘어가면 문짝이 다 떨어진 폐가가 등장한다. 구미호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 바로 그때 진짜 여우가 살금살금 나타나 "아웅~"하고 울부짖으면 폐가에서 이를 몰래 지켜보던 관람객들은 괴성을 지른다.

서울시가 1백억원을 투입해 내년 9월 완공을 목표로 서울대공원에 새로 조성하는 '토종 생태동물원'은 동물과 문화와 사람이 만나는 새로운 개념의 테마파크다. 지금까지 동물원의 개념은 동물을 우리에 가둬두고 간단한 설명이 붙은 표지판을 보며 철조망 너머로 바라보던 식이었다.

하지만 '토종 생태동물원'은 전혀 다른 개념에서 출발한다. 우선 동물들에게는 서식지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이 조성된다. 그 속에는 고구려 성, 원두막, 서낭당, 장승 등 우리 고유의 문화와 관련된 부속물이 설치된다. 관람객은 특수유리나 작은 창문을 통해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관찰한다.

서울대공원 이원효 소장은 토종 생태동물원이 "올해로 개원 20주년을 맞는 서울대공원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는 '생태동물원 10개년 계획'의 첫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물들은 살기 편하고 관람객은 재미와 교육효과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관람객은 야생동물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통해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공원은 2000년부터 세계적인 동물원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국제 워크숍을 수차례 열고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 디즈니 애니멀 킹덤 등을 찾아가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청계산 자락 1만9000평에 조성되는 토종 생태동물원에는 호랑이.반달가슴곰.늑대.삵 등 토종동물 13종 84마리가 12곳의 방사장에서 살게 된다.

토속마을 장터의 흥겨운 분위기가 가득한 출입구를 지나면 물속에서 재롱을 피우는 수달의 모습을 대형 유리를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수달사, 암벽으로 조성된 산양사 등이 차례로 관람객을 맞는다. 특히 곰사의 경우 관람은 물론 고대 조상의 신앙행위였던 곰 제의(祭儀)장면을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27일 오전 11시 열리는 기공식에서는 아기원숭이와 아기호랑이.토종늑대.꽃사슴 등이 시민들과 함께 새 동물원의 탄생을 축하할 예정이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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