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뒷북’ … 전망치 줄줄이 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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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2일 대우증권 영등포지점의 주식 시세판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이날 거래소 시장에서 오른 종목은 78개. 내린 종목은 그 10배에 가까운 764개에 달했다. 주홍진(42) 차장의 마음도 시세판처럼 두드려 맞은 듯싶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지수에 할 말을 잃었다. 전화 끊기가 무섭게 다시 벨이 울렸다.

하지만 막상 주식을 팔겠다거나 펀드를 환매한 고객은 많지 않았다. 그는 “주가가 너무 갑작스럽게 떨어져 팔 타이밍을 놓친 투자자가 많다”며 “주가가 최고점을 쳤던 지난해 10월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낙관론자 실종=연 이틀 이어진 급락세에 시장에서는 낙관론자가 사라졌다. 오히려 소수에 불과하던 비관론자가 시장의 주류로 부각됐다. 대표적인 비관론자 중 한 명인 교보증권 이종우 센터장이 연초 코스피 지수 저점을 1500 선으로 예상할 때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증시가 패닉 상태에 가깝게 급락하자 낙관론을 유지하던 증권사들이 앞다퉈 지수를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2008년 코스피 지수 전망치를 가장 긍정적으로 내다봤던 현대증권은 최근 급락세에 종전 1870∼2460을 1600∼1980으로 내렸다. 굿모닝신한증권·한화증권도 코스피 지수 하단을 1650 선으로 조정했다. 대신·동양종금·메리츠·신영·SK증권은 하향 조정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지수 전망치를 끌어내렸음에도 22일 급락으로 이미 코스피 지수는 이들 증권사가 제시한 하단 수준을 밑돌았다. 굿모닝신한증권 문기훈 센터장은 “지금과 같은 패닉(공포) 장세에서는 지수 전망이 무의미하다”며 “우리 증시의 기초체력을 고려할 때 1600 선 이하 주가 수준은 지나치게 싼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중국이 문제=미국발 경기침체 우려가 글로벌 증시에 암운을 드리우지만 정작 지금부터 문제는 중국이라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미국발 신용경색 위험은 미국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개입과 재정 지원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또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주가 하락도 과도한 수준이다. 과거 경기침체 국면에서 주가는 평균 26% 하락했는데 이미 미국 주가는 15% 하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 떨어져 봐야 10% 하락에 그칠 거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 3∼4년 강세장을 이끌었던 중국을 비롯한 신흥 시장 국가들의 성장이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부장은 “신흥 시장이 무너지면 2004년 이후 대세 상승에 대한 조정이 시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조정은 미국발 위험에 대한 금융 현상이지 경제체력이 그만큼 떨어진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삼성증권 김학주 센터장도 중국발 인플레이션을 가장 큰 변수로 지목했다. 그간 넘치는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공장’으로 글로벌 물가 상승 압력을 차단하며 경제 호황을 이끌었던 중국에서조차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센터장은 “글로벌 유동성이 감소하면 중국의 투자가 줄고 이를 대체할 만한 소비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아 중국이 고속성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IT·자동차를 주목하라=반등을 노려 투자를 하겠다면 지난해 많이 오른 조선·철강·해운 등 중국 관련주보다 가격이 싸고 이익이 늘고 있는 정보기술(IT)·자동차 등이 유망할 거란 전망이 많다. 실제 이날 증시에서 중국 수혜주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현대중공업은 장중 한때 한국전력에 시가총액 3위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아울러 기계·운수창고·화학 업종 등은 5% 이상 급락했다. 펀드 투자자들은 장기 적립식으로 투자한다면 시장 상황에 크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다만 거치식으로 투자했고 특정 부문에 편중돼 있다면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권순학 마케팅담당 상무는 “시장이 어수선할 때는 자산을 분산하고, 지역을 분산하고, 시간을 분산해 장기 투자하는 교과서식 투자가 정답”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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