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베네방 출판사가 지난주 출간한 『노스탤지어의 전력(前歷)』에는 김씨가 대학 시절부터 최근까지 20년 가까이 쓴 시가 담겨 있다. 놀라운 점은 김씨가 이미 한국어와 스페인어로도 시집을 냈다는 점이다. 칠레에서 스페인어로 출간한 『존재의 거품』과 여러 명의 시인이 함께 낸 한국어 시집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시집 출간이다.
김씨가 시를 쓰게 된 건 고등학교 때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를 알게 되면서였다. 프랑스어 선생님이 유난히 프레베르의 시를 좋아해 함께 쓰고 외우고 한 게 계기가 됐다.
대학에서는 스페인어를 전공했지만 프랑스 시에 대한 애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한국어로 시를 쓰면 누가 볼까 걱정스러워서 프랑스어로만 시를 썼다고 한다.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프랑스어를 계속 공부하면서 시 언어를 살찌웠고, 시를 쓰면서 다시 프랑스어 실력이 커졌다.
그러면서 깊이 있게 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건 졸업하고 2년이 지난 1996년이었다. 프랑스 유학도 생각했지만 4년간 전공한 스페인 문학에 대한 미련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김씨는 교수들의 추천에 따라 국립 칠레 대학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인 칠레 유학생 1호라는 그는 중남미 문학을 전공해 올해 말 박사 논문을 낸다.
칠레에서 14년을 살면서 그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대학 교수인 칠레 남자와 결혼했고 두 아들을 뒀다.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보다 칠레 음식에 대한 만족스러움이 더 커지기도 했다. 스페인어는 한-칠레 FTA 회담과 전직 칠레 대통령 등의 통역을 전담할 정도로 능통해졌다.
그러나 칠레에서도 프랑스어와 시에 대한 사랑은 달라지지 않았다. 칠레에서도 프랑스어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 없어서 칠레 프랑스 문화원의 프랑스어 강의 과정을 10년 넘게 듣고 있다. 그의 남편도 문화원에서 만난 친구가 소개했다. 김씨에게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는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보물이다. 그는 “스페인어가 편안한 가족 같다면 프랑스어는 나를 늘 설레게 하는 애인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시를 쓰는 건 큰 즐거움이지만, 때론 말할 수 없는 고통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로 시를 쓰는 일은 평생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시를 쓰는 일은 ‘영혼의 산소’ 같은 것이어서란다.
파리=전진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