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기자와도란도란] ‘친구 따라 강남 가면’ 실패 지름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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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주가 상승을 점치는 근거로 드는 단골 메뉴는?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기업의 기초체력에 큰 문제가 없는 이상, 주가가 급락한 만큼 언젠가는 원상회복할 거라는 거다. 그래서 차트를 가리키며 여기가 지지선이고 이 지지선 부근에 주가가 왔으니 주식을 사야 한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가 있을 수 있다. 가끔은 이만하면 충분히 싸다고 판단해 샀는데 주가가 지하로 급강하하기도 한다. 이럴 땐 팔지도 못하고 물려서 장기투자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펀드에 가입하는 사람들과 주식을 직접 사는 사람들은 투자 유전자(DNA)가 다른가 보다. 펀드 투자자들은 주식 투자자들과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비싸야 산다. 수익률이 높은 펀드를 찾아다니며 돈을 밀어넣는다. 지난해만 봐도 그렇다. 2007년 상반기 수익률 상위 펀드는 중소형주·가치주 펀드. 이들 펀드로 돈이 몰렸다. ‘한국밸류10년투자주식’ 펀드는 3년이 안 돼 환매하면 수수료를 왕창 뜯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익률만 보고 자금이 몰렸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선 중소형주와 가치주가 맥을 못 췄다. 대형주·성장주의 시대가 열렸다. 상반기 수익률만 보고 중소형주·가치주에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투자했던 이들은 마이너스 수익률에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올 연초. 어떤 펀드로 돈이 몰리나 살피니 2007년 수익률 강자 자리를 꿰찬 대형주·성장주 펀드란다. 그러나 돈이 몰리는 이들 펀드 대부분은 수익률이 그저 그렇다. 국내 주식형 펀드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경우 최근 1개월 및 3개월 수익률 ‘톱10’ 펀드에 이름을 하나도 못 올렸다. 오히려 지난해 하반기 고전했던 중소형주·가치주, 그리고 배당주 펀드들이 선전하고 있다. 만약 중소형주·가치주 펀드를 환매해 대형주·성장주로 갈아탔다면 이중손실을 봤음 직하다.

세월이 하수상하다. 내 이웃만 실직하는 줄 알았는데(경기후퇴·recession), 점점 내가 잘릴 것 같은 상황(경기침체·depression)으로 치닫는 듯싶다. 이런 때일수록 위험관리가 중요하다. 수익률을 좇는 발빠른 투자보다는 분산을 통해 위험을 줄이고 기다릴 줄 아는 우직한 투자가 빛을 발하는 시점이다. 자산 분산만으로는 찜찜하다고? 그렇다면 적립식 투자를 통해 시간까지 분산, 이중으로 위험을 줄이는 것도 생각해 볼 때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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