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예술을 명상하는 작가, 프랑수아 오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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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호 16면

현대 프랑스 영화의 대표적 감독인 프랑수아 오종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올해 마흔 살인 그는 고다르 같은 선배 ‘작가’ 감독들과 달리 장르영화라는 대중적인 형식을 이용하고 있는데도, 작가 대접을 받으며 평단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무겁다는 인상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그는 흥행에서도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다. 유럽의 다른 예술영화 감독과 달리 그의 영화는 할리우드 고전영화처럼 매끄럽고 공식적이다. 오종이 일부로부터 의심받는 것은 이런 대중성이 가장 큰 이유일 터다.

그러나 오종이 작가 대접을 받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주제와 형식 면에서 그처럼 일관된 입장을 보여주는 감독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죽음’과 ‘허구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그것이다. 데뷔 초기 성적인 통념을 파괴하는 악동의 이미지로 등장했던 그가 이제 예술의 의미와 삶의 본질을 질문하는 노련한 감독으로 변신한 것이다.

오종의 신작 ‘엔젤’(2007)은 허구에 대한 허구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혹은 허구와 현실은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묻는다. ‘죽음’과 더불어 오종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테마인데, 그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만들어준 ‘8명의 여인들’(2002)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됐던 것이다. 허구는 화면 밖의 어떤 창작가가 만들어낸 생산물이 아니라 허구 속의 인물들에 의해 스스로 이야기되는 구조다.

‘엔젤’은 영국의 로맨스 소설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작품을 각색한 것이다. 엔젤이라는 어느 여성 작가의 꿈과 좌절을 다루고 있는데, 그녀는 전형적인 낭만적 작가로 글쓰기의 재능을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인물이다. 다른 작가의 글은 전혀 읽지 않은 그녀가 마치 샘에서 물을 길어내듯 끊임없이 문장을 만들어 낸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문장을 주워 담으면 그 모든 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변하는 식이다.

영화 속에서 엔젤은 마치 버지니아 울프처럼 미친 듯 자신의 노트 위에 글을 쓰고 있고, 우리는 그녀의 글이 만들어 내는 허구를 구경하게 된다. 허구 속에서, 허구의 인물이 허구를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오종의 영화인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최고의 영화는 ‘스위밍 풀’(2003)이다. 오종의 뮤즈인 샬럿 램플링이 작가로 나왔다.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 타이프라이터로 글을 쓰고 있고, 우리는 그 글이 만들어 내는 살인사건의 스릴러를 구경한다. 보르헤스의 소설 같은 이야기 구조이지만 오종의 영화는 대개 장르라는 쉬운 외피를 걸치고 있고, 또 키치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 화면 때문에 현학적이거나 무겁기보다는 대중적이고 경쾌한 편이다.

원래 오종이 영화계에 등장할 때는 성적 정체성을 위반하는 탕아의 모습으로 알려졌다. 그가 1998년 장편 데뷔작 ‘시트콤’을 들고 나왔을 때, 많은 관객은 프랑스에서 캠프(camp:성적 동일집단, 곧 동성애) 영화가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 현상을 목격했다. 고립되고 어두운 공간에 밀려 있던 동성애 관련 테마가 밝은 태양 아래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데, 관객들은 환호했던 것이다.

그에게 환호를 보냈던 관객들이 모두 캠프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닐 테고, 아마도 동성애 테마를 넘어서는 세대교체적인 주제와 키치적인 표현의 독특함이 성공의 열쇠였을 것이다. 오종은 스릴러라는 장르의 익숙한 틀을 빌려 주제의 심각함을 표면 아래 숨겼다. 오종의 분신으로 보이는 청년은 동성애자인데, 놀랍게도 그는 어머니와 관계 맺고 더 나아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런데 근친상간, 친족 살해 같은 ‘불안한 위반’이 마치 광고처럼 너무나 경쾌하고 가볍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모든 권위는 폐기의 대상에 오르고, 세상은 포스트모던의 유행 속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할 때다. 오종은 어느덧 새 세대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의 위반은 아무 이유 없이 동급생을 살해하는 10대들의 이야기인 ‘크리미널 러버’(1999), 또 동성애와 양성애 그리고 성전환과 페도필리아(소아애호증)를 뮤지컬과 혼합한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2000) 등으로 이어졌다. 성적 정체성과 관련된 위반할 수 있는 모든 행위는 다 보여줄 듯 오종은 기세를 부렸다.

20세기 말에 등장한 이 위반자가 젊은이들의 대변자 역할을 넘어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까지 이른 작품이 ‘사랑의 추억’(2000)이다. 여기서도 샬럿 램플링이 주연했다. 성적 위반의 공격성은 완화되고, 오종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죽음’에 대한 명상이었다. 불과 서른세 살밖에 안 된 감독이 50대 중반의 부부를 내세워, 늙음과 육체적 사랑의 허무함을 고민한다. ‘죽음’이라는 오종 영화의 일관된 주제가 그 틀을 형성하는 게 바로 이 영화부터다. 에로스와는 멀어 보이는 중년들이 육체적 관계에 집착하는 장면 자체가 필멸의 존재인 우리의 운명에 대한 슬픔의 반영이다.

한때 눈부신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램플링이 처진 살의 육체로 남자의 몸과 뒤섞일 때면, 우리는 에로스의 흥분보다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슬픈 운명의 감정 속으로 고립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명상은 ‘5X2’(2004), ‘타임 투 리브’(2005)로 이어지며 오종의 작품 세계를 더욱 확장했다. 두 영화 모두 ‘슬픔’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오종이 얼마나 뛰어나게 표현해 내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으로 남아 있다.
어느덧 오종은 탕아의 이미지를 벗고, 예술의 의미와 존재의 슬픔을 고민하는 성숙한 작가의 초상으로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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