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한국현대사>6.상해臨政 法統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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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해방이 된지 벌써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일제시기 상해임시정부 평가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고있다. 실제로 임정의법통성을 강조하는 견해와 임정을 하나의 독립운동단체로 보는 견해 사이에는 건널수없는 간격이 존재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많은돈을 들여 임시정부를 새롭게 재조명하고 추대하는 사업은 빈번하게 열리고 있지만 오히려 소장학자들 사이에서는 임정의 정통성을부정하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정통론적인 역사인식이 주관적이고 배타적인 역사인식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임정은 민족해방운동을 총괄했던 지도기관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운동단체에 불과했다▲제1공화국은 인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임정을 계승하지 않았다▲임정의 정통성 강조가 순수하지 못하고 권위없는 정권의 정통성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등 크게 네가지로 집약된다.
이것을 다시 분류하면 역사인식,임정의 역할,임정의 인적.이념적 계승,정치적 악용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비판이 제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주장의 타당성 여부는 앞으로 학계의 논의를 통해 분명한결론이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임정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견해가 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는 냉정하게 짚고넘어가야 한다.임정의 재조명과논의의 한단계 진전을 위해 매듭을 한번 짓자는 것이다.
우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정치적 필요나 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임시정부의 권위를 이용함으로써 오히려 임정의 정통성을 훼손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해방직후 친일파세력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임정정통론」을 내세운 것과 80년대 중반 전두환(全斗煥)정권이 『상해임시정부-대한민국-제5공화국으로 법통성이 이어진다』고 주장한 것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더구나 분단과 독재로 굴절된 한국정치사로 말미암아 한때 헌법전문(前文)에서 임정의 정통성부분이 삭제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즉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마련한 제헌헌법 전문에는「대한민국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명기되어 있었는데,5.16군사정변 후 개정한 헌법전문에는 3. 1운동을 계승한다고만 명시했을 뿐 임시정부에 대한 언급이 빠졌던 것이다. 이것은 1972년과 1980년의 헌법개정때도 시정되지 않다가 1987년 6공화국 헌법에 가서야 다시 첨가됐다.
다음으로 임정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나 인식이 너무 주관적이고근거가 부족했다는 점을 들수 있다.부끄러운 점은 감춘「찬양일색」의 연구가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들 연구는▲임정이 3.1운동의 결과 성립된 민족해방운동의 총영도기관이고▲임정의「민주공화제」이념은 제헌헌법에 계승되며▲광복군을 결성하고 일본에 선전포고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의 근거가 너무 추상적이고 취약했다.
실제 임정의 초기활동은 왕성했지만 1920년대 중반에는 내부갈등으로,30년대는「경제곤란으로 정부의 이름을 유지할 길도 막연」(『白凡日誌』)했던 시절도 있었다.그러다가 일제말기에 광복군이 결성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고,국제적인 주 목을 받게 됐다. 이러한 고난의 역정(歷程)이 가감없이 소개되고 연구돼야 한다.그것이 임정의 위치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임정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30년대 일본의 만주침략과 中日전쟁이 벌어지자 얼마나 많은 조선의 지식 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집안에 들어앉거나 변절해 친일파로 변해갔는가.
김구(金九)의『백범일지』에서「아침,저녁을 빌어먹는 것이니 거지 중에는 상거지였다」고 묘사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오직 민족독립만을 위해 활동한 임정의 대표성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계급사관의 영향으로 민족주의운동을 부정하는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특히 임정의외교독립론과 미미한 활동이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사회주의 이념의 퇴조와 함께 많이 약화되었고,역사상 최초로 민주공화제를 주장했던 임정의 진보성을 평가하려는 견해도 나왔다.
정치적 색채를 띤 「임정 정통성론」에 대한 비판과 임정연구의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부분적으로 인정할 수 있고 앞으로 개선돼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계급사관에 입각해 대한민국의 뿌리가 상해임정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인식이다.
조동걸(趙東杰.국민대)교수는 『3.1운동이 구한국부터의 민족운동을 총결산하고 민족운동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면 그 방향이집약되어 표현된 것이 임시정부』라고 지적했다.
임정을 비판하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 정치적 요인의 제거도 중요하지만 임시정부를 새롭게 인식하고 평가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 이뤄져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먼저 독립운동의 한 상징으로서 임정이 가지고 있던 명망성이 제대로 평가돼야 한다.
즉 암흑같던 일제식민통치아래에서 우리 민족이 임정에 대해 품었던 희망과 그것이 독립운동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해 주목해야한다. 윔즈는 이것에 대해「한국의 어린이들은 25년간 임정이 독립의 날을 가져오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비밀리에 배워왔다」고기록하고 있다.
***형식적 行事없게 둘째,단체별.지역별.인물별로 이뤄졌던 독립운동사연구를 종합화해야 한다.그동안 임정연구는 임정자체의 활동에만 치우쳐 임정과 다른 독립운동단체의 관련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임정의 역사적 위치를 올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임정중심으로 모든 독립운동단체의 활동을 계열화해 독립운동사를 써야 한다.
셋째,요식행위(要式行爲)에 그치고 있는 임정관련 행사를 실제화해야 한다.몇년 전 중국에 있는 임시정부청사 건물을 들여와 복원하려다 그것이 가짜로 판명되어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사업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관계 자료를 수집해 임정의 활동을 복원하는 작업을 해야한다.
특히 임정이 1941년 발표한 「건국강령」(建國綱領)에서 표방한 정치.경제.교육균등의 삼균주의(三均主義)정신을 오늘의 한국사회에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임정의 정통성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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