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의 연극배우 튜릭-戰場에 핀 인간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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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내전으로 얼룩져 있는 사라예보의 비극이 예술로 승화돼 표현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4일부터 시립사라예보청년극장에서 공연중인알프레드 자리 프로덕션의 연극『감옥에 갇힌 우부』와 영국 작곡가 나이겔 오스본이 작곡한 오페레타『에브로파』가 바로 그것.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는 4일부터 사라예보 시립청년극장에서 공연중인 알프레드 자리 프로덕션의 연극『감옥에 갇힌 우부』의 주역 네르린 튜릭(43)의 비극적 삶과 그 극복의 역정을 소개하고 있다.
또 AFP통신은 제11회 사라예보 겨울 페스티벌의 하나로 7일밤 공연된 나이겔 오스본(46.영국 에든버러대학 음악교수)의새 곡 오페레타 『에브로파』의 소식과 함께 음악을 통해 사라예보의 참상을 일깨우는 오스본의 잇따른 활동들을 전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간판스타로 명성을 드날리던 튜릭은 지금은 양다리를 잃은 채 휠체어에 의지하는 가련한 신세가 돼버린인물.지난 92년 6월10일 사라예보 중심지에 있는 그의 집근처를 걷고 있을때 한 세르비아인이 무자비하게 두 다리를 잘라버린 것이다.
가족들은 그를 시립병원에 입원시켰지만 그는 먹기를 거부하며 죽을 작정으로 두달 가까이를 보냈다.그가 삶의 끈을 붙들게 된것은 92년 8월 아내가 그가 입원하고 있던 병실 바닥에서 두번째 딸을 출산하면서부터.그의 아버지는 죽기만을 소원하고 있던그에게『비록 애비가 방 한귀퉁이에 앉아서 지낼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아버지를 원한다』고 설득했다.
프랑스 극작가인 자리에 의해 창작된 이 연극은 1896년을 살았던 뒤룩뒤룩 살찐,역겹고 파괴적인 독재자 우부라는 인물이 한세기 후에 사라예보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온다는데서 시작된다.단지 지명으로만 존재할 뿐 실체는 사라지고 없는 공허한 도시인 보스니아의 수도는 왕년의 폴란드 왕 우부를 맞는다.작가는 이를 통해 한세기 전의 폴란드 존재처럼 보스니아란 존재 역시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을 냉혹하게 일깨워 준다.
단일종족국가이기를 갈망하는 세르비아의 모습에서 파시즘이 다시한번 유럽의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서구사회는 이같은 위협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연극에서 튜릭은 「소름끼치는 작은 괴짜」로 등장,그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회초리질을 하는가하면 무원칙적인 군사훈련을지휘하기도 하고,노예에게 질투를 느껴 스스로를 감옥에 집어넣는한심스런 인물상을 그려낸다.
이 연극의 연출을 맡고 있는 프랑스 감독 마시모 슈스터는 『우리는 사라예보를 지킴으로써 인간영혼의 삶이 본질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다』면서『풍요로웠던 한 사회를 잃어가고있으며 이를 회복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바로 이곳 에서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겨울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오페레타『에브로파』는 사라예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13명의 솔리스트,1백50명으로 구성된 시립청년합창단에 의해 무대에 올려졌다.
가극가사는 보스니아인인 고란 시믹이 맡았다.작곡가 오스본은 이 곡을 위해 지난주 사라예보행을 감행,사라예보의 한 아파트에서 작사가와 함께 나흘밤을 꼬박 새우며 창작에 매달렸다.
망망대해에 표류한 원양정기선인『에브로파』는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아는 것조차 포기해버린 젊은 승객들을 이끌고 가는한 키잡이여인과 승객들의 이야기로 이끌어진다.『에브로파』는 바로 사라예보인 셈이다.
지난 66년 자동차 무료승차객으로 처음 이 도시를 찾았을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환상적인 도시였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는오스본은 『작품을 통해 이 엄청난 비극을 눈감고 있는 유럽을 고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洪垠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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