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혁명 시대-가격파괴 넘어선 총체적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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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통혁명이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국내에서도 「가격파괴」가 유통업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일고 있는 유통혁명은 이보다 더 깊고넓은 변화를 담고 있다.
가격파괴가 소매업에서의 값내리기 경쟁을 의미한다면 유통혁명은도매업과 제조업까지 포함한 상품의 全유통경로에 걸쳐 벌어지는 총체적이고 전면적인 가격경쟁을 말한다.
일본의 이코노미스트誌는 최근 유통시장에서 일어나는 이같은 혁명적인 변화가 곧 全산업에 파장을 미칠 것으로 진단한다.
우선 제조업체의 가격지배력이 떨어지고 있다.
대형소매업체들이 유통혁명을 주도하면서 가격결정권이 서서히 유통업체로 넘어가고 있다.가전제품.식품.의약품 등에서 메이커가 출하가격만 정해 내놓는 이른바 오픈가격제가 일반화됐다.여기에다소매기업이 독자적으로 상품을 기획해서 메이커에 주문하는 자체기획상품(PB=프라이비트 브랜드)의 등장은 유통업과 제조업의 위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대형백화점에서 의류.잡화 등 몇가지 품목만 기획상품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미국.일본에서는 필름.콜라.세제.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수천품목이 PB상품으로 개발돼 팔리고있다. 특히 시장개방이 확대됨에 따라 해외생산까지 포함한 기획상품이 늘고 있다.
기획상품은 제조업체로서도 재고부담없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수 있고 광고비나 판촉비가 안든다는 장점때문에 대형제조업체들마저 다투어 참여하고 있는 추세다.
또 PB상품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제조업체도 나타났다.미국에선 이미 PB전문메이커협회(PLMA)까지 결성돼 현재 2천개 기업이 가입하고 있을 정도다.
PB붐과 함께 소매업에서는 부문해체라는 새바람이 일고 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상품구분과 진열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 구매동기를 중심으로 상품을 갖춰놓는 것이다.예컨대 어린이를 상대로 한 상품群의 경우 완구.의류.문구.과자를 불문 하고 한데 모아 단일매장에서 판매하는 식이다.
여기에는 한 종류의 상품群에서 압도적인 상품구색을 갖추고 값을 대폭 낮춘 이른바 카테고리 킬러形 소매점이나 식품슈퍼마켓과드러그스토어(미국식 잡화점)를 결합한 콤비네이션 스토어 등이 포함된다.
유통혁명은 또 제조-도매-소매의 기존 수직계열관계를 바꿔놓고있다. 일본에서 제판동맹(製販同盟)으로 알려진 제조.판매 일체화방식은 메이커와 소매업체가 제휴,상품개발이나 비용절감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군소유통업체들은 기획상품을 공동개발하거나 공동집배송센터를 운영하는가 하면 아예 합병을 통해 대형화로 나가고 있다. 도매업체들은 이른바 풀라인(종합)도매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특정메이커의 대리점역할에서 벗어나 복수 메이커로부터 필요한상품을 조달,중소슈퍼마켓과 편의점에 일괄납품하는 방식이다.미국에선 플레밍社,슈퍼밸류社,마킷슨社등이 풀라인방식으로 재기(再起)했고 일본에서도 유키지루시(雪印)악세스社 등 식품도매업체들이속속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처럼 유통혁명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원칙은 간단하다.소비자가원하는 물건을 가장 싸고 편리하게 제공하자는 것이다.또 경쟁은이같은 변화를 더욱 빠르게 하고 있다.
金鍾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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