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서 풀지 못한 신앙 목마름 ‘자아’를 내려놓아야 축여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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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용규 선교사는 "응답 받는 기도를 원하고,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기도부터 바꿔야 한다"며 기도의 핵심은 '순종하려는 마음'이라고 했다.

 2006년 3월 국내 출판계에 『내려놓음』(규장)이란 기독교 서적이 출간됐다. 불과 1년 반 만에 50만 부가 팔렸다. 출판계 관계자는 “일반 서적으로 치자면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와 맞먹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이용규(41·사진) 선교사다. 외국의 유명한 목회자도 아니고, 대형 교회의 목사님도 아니다. 젊고, 이름도 없는 선교사다. 지난달 그가 다시 책을 냈다. 제목은 『더 내려놓음』(규장, 9800원), 한 달 만에 8만5000부가 팔렸다. 그의 책을 목마르게 기다린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그토록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쳤을까. 무엇이 그리도 많은 국내 크리스천의 목을 축였을까. 수소문 끝에 몽골에서 잠시 귀국한 그와 마주 앉았다. 1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찻집에서 그에게 ‘내려놓음’을 물었다. 그는 자아와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울림을 끄집어냈다.

 
 -『내려놓음』을 읽고 “갈증이 풀렸다”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목마름은 ‘한국 교회의 결핍’이기도 하다. 국내 개신교계의 결핍은 뭔가.

 “신앙 생활이 자아 실현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점이다. 한국 교단은 아무래도 윤리적 설교가 많다. 성공한 모델을 보여주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걸 통해서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신앙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대목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그 다음이 없다.”

 -그 다음이 뭔가.

 “‘나’라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부분이다. 그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자아가 온전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여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건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다. 어디서 그걸 깨쳤나.

 “‘광야’라는 학교다. 히브리어로 ‘광야’와 ‘말씀’의 어근은 같다. 세례 요한도 광야를 거쳤고, 예수님도 광야를 거쳤다. ‘광야’는 춥고, 배고픈 곳이다. 그렇다고 사막과 같은 공간만은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 ‘광야’를 가지고 있다.”

 -당신의 ‘광야’는 어딘가.

 “하버드 대학이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공간이 내겐 ‘광야’였다. 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양사를 전공했다. 그런데 ‘새로운 영역’이란 명목으로 하버드에서 중동학 박사 과정을 밟게 됐다. 언어도 모자라고, 전공에 대한 기본 배경도 없었다. 무작정 하버드에 내던져진 상태였다. 앞이 캄캄했다.”

 -당시 심정과 생활은.

 “막막하고 힘들었다. 잠자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교통사고가 나서 합법적으로 좀 잤으면’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가장 힘든 건 공부가 아니었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그런 절망의 끝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의 꿈, 나의 불안, 나의 걱정, 나의 집착을 하나씩 접고, 내려놓았다. 그렇게 ‘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말이다. 그 모든 과정이 내겐 ‘광야’였다.”

 -그랬더니 뭘 느꼈나.

 “굉장한 자유와 엄청난 평화다.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날 성공시키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주님의 예비하심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책에서 ‘내려놓음’을 말했다. 무엇을 내려놓는 건가.

 “‘나’라는 자아다. 자아가 뭔가. 내가 가진 지향과 욕심, 집착이다. 그걸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잡는 것이다.”

 -나의 지향과 하나님의 지향이 부딪히면.

 “내 것이 부서지고, 하나님의 지향이 나를 사로잡도록 하면 된다. 그게 바로 ‘내려놓음’이다. 그렇게 ‘자기애(自己愛)’와 ‘자기의(自己義)’를 내려놓으면 된다.”

 -‘자기애’가 뭔가.

 “자기에 대한 사랑이다. 달리 말해 자기에 대한 집착이다. 한국에 와서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와 TV광고 등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끊임없이 하는 얘기가 ‘나’였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의 개인 홈페이지에 가도 마찬가지다. ‘나’를 꾸미고, ‘나’를 포장하고, ‘나’를 과시한다. 쉬지 않고 ‘나는 이렇게 필요한 사람이다’‘나는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라. 그건 이미 ‘종교’다. 이 시대에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종교는 바로 ‘나에 대한 숭배’다. 그게 ‘자기애’다.”

 -그럼 ‘자기의’는 뭔가.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다. ‘내가 성경을 더 많이 읽고, 기도를 더 많이 하고, 목사님을 더 섬기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실 거야’하는 생각이다. 그게 누구의 생각인가. 바로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왜 ‘자기의’가 있나.

 “선악과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옳다, 그르다’를 나의 잣대와 나의 가치로 재고 평한다. 그건 하나님이 중심에 있지 않고, 내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신앙을 오래 하고, 믿음 안에서 좀 더 앞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분들일수록 범하기 쉬운 게 바로 ‘자기의’다.”

 -그럼 구원은 어디서 오나.

 “많은 이들이 교회에 다니면 일단 구원은 따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원은 기본’이라고 전제하고 가는 경향이 만연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십자가 설교’도 많이 없어졌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라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구원 여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그래서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 구원은 교회를 다니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가 되나.

 “‘자기 사랑’과 ‘자기의 뜻’을 십자가에 매달아야 한다. 그렇게 자아를 못박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아의 실현, 나의 성공을 위해 교회에 다닌다. 그게 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은 나를 믿는 것이다. 그게 자기 사랑이다. 이게 십자가 안에서 해결되지 않고선 온전한 자유도 없고, 온전한 행복도 없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으면 어찌 되나.

 “내 안에 공간이 생긴다.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공간이 생긴다. 예전에는 공간이 없었다. 내 속이 ‘자아’로만 꽉 차 있어서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통로도, 머무실 자리도 없었던 것이다.”

 -공간이 생기면 어찌 되나.

 “공간이 생기면 달라진다. 거기서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주님과 나, 나와 주님의 동행이 가능해진다. 이게 바로 예수님과의 동행이고, 하나님과의 하나됨이다.”

 -그럼 자아와 하나님의 관계는.

 “우리는 모두 ‘나’라는 울타리를 가지고 있다. 그 울타리 안은 ‘자아’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오십시오’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기도만 한다고 오시는 게 아니다. 그 울타리를 거두어야 한다. ‘나’라는 자아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어져야 한다. 그럴 때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게 된다.”

 -가슴에 새기는 성경 구절이 있다면.

 “갈라디아서 2장20절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용규 선교사는 어느새 교계에서 ‘스타’가 됐다. 젊은 크리스천들도 ‘이용규’와 ‘내려놓음’을 안다. 각종 강연이나 설교에 대한 요청도 쇄도한다. 그래도 그의 기도 소리는 변함이 없다. 그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기도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제 기도의 마지막 대목은 항상 똑같다”며 기도 구절을 읊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커서 주님께서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주님은 탄식하시면서 옆에서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이용규 선교사는

 1967년 서울 출생.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미국 하버드 대학으로 갔다. 거기서 8년간 ‘중동지역학 및 역사학’을 전공하며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훌쩍 몽골로 떠났다. 2004년 6월 미국 보스턴 케임브리지 연합장로교회로부터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된 것이다. 그래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이레교회의 담임을 맡고 있다. 또 크리스천 대학인 몽골국제대학교에서 몽골제국사 강의도 하고, 부총장직도 겸하고 있다. 선교사인 부인과 아홉 살 아들, 다섯 살 딸과 함께 지낸다. 자신의 저서『내려놓음』에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복음 자체를 말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가장 고전적인 주제를 다룬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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