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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소외계층 지원 늘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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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병원에서는 당장 남편이 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술비 300만원이 없어 너무 막막했습니다. 친구나 친척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었습니다. 신용불량자였던 저나 남편에게 은행은 너무 멀었습니다. 그때 저를 살려준 것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소액금융지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무 상환을 성실히 해 온 덕택으로 수술비를 대출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남편은 건강을 되찾고 다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헤쳐 나가야 할 일이 많지만 희망이 보이기에 힘들지 않습니다”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소액금융을 지원받아 경제적 위기를 극복한 한 주부의 사연이다. 신용회복위원회는 개인워크아웃 성실이행자를 대상으로 소액 금융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이들이 일시적인 경제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긴급생활안정자금을 대출해 준다. 사업 개시 1년 만에 희망을 되찾은 사람이 12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아직 매우 부족하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함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한 때다.

열심히 일하는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소액 금융 지원 사업을 더욱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제도권 금융기관에 의한 서민금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한번 금융채무불이행 경력이 있으면 빚을 다 갚아도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신용등급이 낮기 때문이다. 이들은 긴급하게 자금이 필요할 때 고금리를 감수하고 대부업체를 이용하거나 불법 사채업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이자 부담으로 더 깊은 빈곤의 늪으로 빠져드는 악순환이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대출 자산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금융기관을 탓할 수도 없다. 서민금융은 경제적 접근보다 일정 부분 공공성에 기초한 사회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 해법은 대안기관을 통한 소액 금융 지원 사업이다.

둘째,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효과적 지원이 가능하다. 신용등급이 낮아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저신용자는 54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 모두를 금융 지원을 통한 복지 영역으로 끌어들이기에는 사회 전체의 부담이 너무 크다.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필요하다. 결국 누구에게, 언제 지원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다. 책임을 다하는 자를 우선 지원하는 것이 적절하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셋째, 소액 금융 지원은 채무자 구제제도의 기능적 완성을 위해 필요하다. 금융채무 불이행자의 신용 회복은 단순히 일부 채무를 감면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 채무 조정, 신용관리 교육, 취업 지원과 함께 긴급자금 지원 등 금융안전망이 입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작동돼야만 가능성이 커진다.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신용회복 지원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다.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경제적 재기를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 소액 금융 지원이 든든한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올해는 정부·기업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쏟아주길 기대한다. 이것이 결국 우리 사회의 현안인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계층 간 갈등을 치유하는 길이다.

이영찬 신용회복위원회 소액금융지원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