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 때마다 폐지 1순위 해양부, 이번에 침몰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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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수산부가 설립 12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해양부의 수산 부문을 농림부와, 항만·물류·해양 부문을 건설교통부와 합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에 해양부는 산하기관을 동원해 반대 광고를 내고, 부산지역 4개 국립대 총장이 반대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장관까지 나서 ‘폐지 불가론’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 조직이 한 번 만들어지면 여간해선 없애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탄생한 부처는 결국 도마에 올라 해체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무현 해양부 장관은 최근 기자 간담회를 열고 “전 세계가 해양정책을 확장하는데 해양부를 해체하는 것은 국제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중국에서 해양부를 벤치마킹해 해양 행정조직을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양부는 28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국회 바다포럼,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여수 세계엑스포 특위 소속 의원들을 일일이 접촉하며 해양부 존속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중이다.

 하지만 해양부의 이런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랭하다. 이명박 당선인의 모토는 ‘절약하며 일 잘하는 실용정부’다. 정부 조직에서 중복 기능을 없애 효율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점에서 해양부는 탄생 때부터 효율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평이다.

 해양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1996년 8월 신설됐다. 거제도 출신의 ‘바다 사람’YS가 고향 사람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대표적 업적이었다. 그 전에 해양부는 해운항만청과 수산청이라는 차관급 ‘청’조직이었다. 두 청을 합해 장관급 부처로 키웠더니 공무원 자리가 많이 생겼다. 하지만 효율이 높아졌다는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해양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폐지 1순위로 꼽혔다. 김대중 정부도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내걸며 해양부를 없애기로 했다. 그러나 그때도 관련 단체들의 폐지 반대 신문광고가 등장하는 등 반발이 거셌다. 그러자 YS가 직접 나섰다. 98년 2월초 대통령이던 YS는 당선인 신분의 DJ에게 해양부를 유지해 달라고 부탁했고, DJ도 YS의 민원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해양부 장관 자리가 당시 DJ와 공동정부를 구성했던 자민련 몫으로 정리되면서 해양부는 기사회생했다. 장기적인 국가경쟁력보다 여론과 정치논리로 연명해온 셈이다. 지난 10여 년간 정치인 출신 장관이 유독 많았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초대 해양부 장관은 신상우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DJ 정부 때 장관을 지냈다. 김선길·정상천·정우택씨도 전·현직 의원 출신 장관이었다.

인수위 관계자는 “폐지 대상 부서의 필사적인 로비와 저항 때문에 조직 개편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며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인수위를 압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상렬·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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